“시에는 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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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는 소리가 있다”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4.2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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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⑫ 벌레가 나인가 기와가 나인가

벌레가 나인가 기와가 나인가                       蟲也瓦也吾
아무런 재주도 없고 기술도 없구나                  苦無才與技
뱃속에는 불기운 활활 타올라                       腹有氣烘烘
세상 사람과 크게 다르구나                         大與人殊異
사람들이 백이(伯夷)는 탐욕스러웠다고 말하면      人謂伯夷貪
내 분노하여 빠득빠득 이(齒)를 가네                吾怒切吾齒
사람들이 영균(靈均 : 굴원)은 간사했다고 말하면   人謂靈均詐
내 화가 나 눈초리가 찢어지네                      吾嗔裂吾眥
가령 내게 입이 백 개가 있다고 해도                假吾有百喙
어찌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 단 한 명도 없는가? 奈人無一耳
하늘을 우러러 말을 하니 하늘이 흘겨보고          仰語天天〇
몸을 구부려 땅을 바라보니 땅도 눈곱 꼈네         俯視地地眵
산에 오르려고 하자 산도 어리석고                 欲登山山獃
물에 다가가려 하자 물도 어리석네                 欲臨水水癡
어이! 아아! 아아!                                 咄嗚呼嗚呼
허허 허허 한탄하며                                唉噓唏噓唏
광대뼈와 뺨과 이마는 주름지고 눈썹은 찌푸리고   顴頰顙皺皴
간과 폐와 지라는 애태우고 졸여졌네               肝肺脾熬煎
백이가 탐욕스러웠다 하든 영균이 간사했다고 하든 夷與均貪詐
그대에게 무슨 상관인가!                           於汝何干焉
술이나 마시고 취하면 그뿐이고                     姑飮酒謀醉
책이나 보며 잠을 이룰 뿐이네                      因看書引眠
한탄하누나! 잠들면 차라리 깨지 않고              于于而無訛
저 벌레와 기와로 돌아가려네                       還他蟲瓦然
『아정유고 2』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고 말한다.

많이 읽으라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라는 말이고, 많이 쓰라는 것은 어휘력과 문장력을 훈련하라는 뜻이고, 많이 생각하라는 것은 구상력과 구성력을 연마하라는 말이다.

만약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다비평(多批評)’을 언급하고 싶다. 많이 비평하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되 단순하게 읽지 않고 비평할 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마치 좋은 음식이라도 단순히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꼭꼭 씹어서 제대로 소화해야 자신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치처럼 말이다.

이덕무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시인이 될 수 있었던 힘 역시 비평에서 나왔다. 특히 이덕무는 박지원의 글을 꼼꼼하게 읽고 예리하게 비평하면서 자신의 시와 문장을 개척해나갔다.

종탑(종각) 북쪽에서 엮은 작은 선집이라는 뜻의 『종북소선(鐘北小選)』이 대표적인 이덕무의 박지원 비평집이다. 여기에서 이덕무는 “글에는 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글에는 소리가 있는가. 어질고 현명한 옛사람인 이윤과 주공이 한 말을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글을 통해 그 목소리가 매우 정성스러웠을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내쫓긴 주나라 백기와 홀로 남겨진 제나라 기량의 아내를 직접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글을 보면 그 목소리가 매우 간절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 이 시에 담긴 이덕무의 목소리는 어떻게 상상해볼 수 있을까. ‘절규(絶叫)’ 다. 이덕무의 절절한 부르짖음과 피맺힌 울부짖음이 귀에 들린다.

이렇게 18세기의 작자인 이덕무와 21세기의 독자는 공감하고 교감한다. 시가 주는 공감과 교감은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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