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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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선택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7.30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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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㊱ 만추
안중식, 「성재수간도」, 종이에 수묵담채, 24×36㎝, 조선시대, 개인소장.
안중식, 「성재수간도」, 종이에 수묵담채, 24×36㎝, 조선시대, 개인소장.

가을날 작은 서재 맑은 흥취 못내 겨워      小齋秋日不勝淸
갈포(葛布) 두건 매만지며 물소리 듣네      手整葛巾聽水聲
책상엔 시편(詩篇) 울타리엔 국화           案有詩篇籬有菊
그윽한 풍취 도연명 닮았다 웅성이네        人言幽趣似淵明
『영처시고 2』(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시를 읽는 순간 누구나 서재, 갈건, 시편, 국화, 도연명 등 시어(詩語)의 연속성과 연관성을 통해 어렵지 않게 세상사를 멀리하며 처사(處士)와 은사(隱士)의 삶을 추구하는 젊은 선비 이덕무의 순박한 마음과 담백한 삶을 짐작할 수 있다.

글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언어의 선택’이다. 어떤 언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글 전체의 분위기와 품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의 경우 더욱 언어의 선택이 중요하다. 시는 생략과 압축, 절제와 여백의 미학을 추구하기 때문에 산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럼 시는 어떻게 언어를 선택할까? 시어(詩語)가 바로 그것이다. 한 마디의 시어에 백 마디, 천 마디 혹은 만 마디의 말을 담아야 하고 백 가지, 천 가지 혹은 만 가지의 뜻을 새겨야 한다.

백 마디·천 마디·만 마디의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말을 다 표현할 수 있는 시어의 선택, 백 가지·천 가지·만 가지의 뜻을 다 드러내지 않아도 자신의 뜻을 다 묘사할 수 있는 시어의 선택, 그것이 바로 시의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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