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활쏘기’ 문화의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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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활쏘기’ 문화의 역주행
  • 한정곤 기자
  • 승인 2020.07.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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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전통 활쏘기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우리나라의 활쏘기는 고구려 벽화와 중국 문헌에도 등장하는 등 역사가 길고 활을 다루고 쏘는 방법과 활을 쏠 때의 태도와 마음가짐 등 여러 면에서 고유한 특성이 있으며 현재까지도 맥을 잇고 있는 문화 자산이라고 지정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활·화살·활터 등 유형 자산이 풍부하게 남아 있고 활과 화살의 제작 기법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무예의 역사와 전통사회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평가받았다고 밝혔다.

세대 간 단절 없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전국 활터를 중심으로 유·무형 활쏘기 관련 문화가 널리 퍼져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활쏘기는 택견·씨름과 함께 3대 전통무예로 불리지만 택견이 198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76호로, 씨름이 200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된 것과 비교하면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면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기득권 타령에 대중화의 길을 외면하고 전통보다는 외래문화를 도입해 겉모양 치장하고 과시하기에 바빴던 그동안 활쏘기 문화의 역주행을 지적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대한궁도협회는 1962년 규약 개정을 통해 사업 제1항에 ‘국기제정(國技制定)운동의 추진’을 내걸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박정희 군사정부가 안보체육으로 태권도에 더 관심이 많았던 탓이라고 외부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고 싶겠지만 설사 받아들인다 해도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로 대중화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던 내부적 요인이 더 컸음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협회가 나서서 ‘국제궁도’라는 명분을 쫓아 양궁의 도입과 보급에 더 열을 올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런 마당에 국기(國技)는 고사하고 도리어 외래문화가 활터에 도입돼 마치 전통인 양 행세하고 있는 현실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이번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활쏘기’라는 명칭 외에 그 어떤 명분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일부의 비판조차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활터마다 제각각인 사법과 예절, 어설픈 대중화와 과녁 맞추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각궁을 밀어낸 카본궁의 주인 행세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전통을 역행하고 있는 왜곡된 활쏘기 문화는 보는 이의 눈살마저 찌푸리게 한다.

활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거센 명칭부터가 문제다. 문화재청은 이번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명칭으로 ‘활쏘기’를 선택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문헌에서 확인된 순수한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년 50여개에 이르는 전국대회 중에서 ‘활쏘기’라는 대회 명칭은 지난해 첫 대회가 열린 ‘2019 전국여궁사 활쏘기대회’를 제외하면 서울 황학정이 개최하는 ‘종로 전국 활쏘기대회’가 유일하다.

나머지 대회는 강원도 양구 양록정의 ‘통일염원 전국 국궁대회’가 있을 뿐 한결같이 ‘궁도대회’다. 활쏘기를 대표하는 단체마저 대한궁도협회라며 ‘궁도’를 사용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황학정에서 열린 ‘종로 전국 활쏘기 대회’에서 상하 흰색 경기복을 입고 참가한 궁사들. [헤드라인뉴스 DB]
황학정에서 열린 ‘종로 전국 활쏘기 대회’에서 상하 흰색 경기복을 입고 참가한 궁사들. [헤드라인뉴스 DB]

사실 ‘궁도(弓道)’라는 말은 엄밀히 따지자면 일제강점기 시절 탄생한 왜색 언어다. ‘근대 국궁1번지’로 불리는 황학정이 발간한 『황학정 100년사』는 이전까지만 해도 ‘궁술(弓術)’로 표기됐던 활쏘기가 1932년 궁도로 바뀐 이유를 “당시 일본식민지 관청인 총독부의 압력 내지는 작용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적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가 대륙침략을 본격화하고 무(武)를 숭상하는 국민정신운동을 펴면서 무술(武術)이란 용어를 무도(武道)로, 궁술을 궁도로, 검술을 검도로 바꾼 것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일본 와세다대학의 궁술부(弓術部)가 궁도부(弓道部)로 이름을 바꾼 시기가 1929년인 것을 감안하면 설득력을 갖는다. ‘술(術)’을 ‘도(道)’로 격상시켜 무(武)를 숭상케 하려는 군국주의 압력이 일제강점기였던 당시의 조선에도 적용된 것이다.

이제 국가무형문화재 명칭이 ‘활쏘기’로 지정됐다면 이를 대표하는 단체도 대한궁도협회가 아니라 당연히 ‘대한활쏘기협회’가 되어야 한다. 궁도대회 역시 ‘활쏘기대회’가 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한궁도협회가 전통 활쏘기를 계승하지 않는 단체라고 주장하지 않는 한 협회 명칭 변경은 당장 시행돼야 한다.

경기복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활터마다의 특색도 살리지 못하고 유래조차 알 수 없는 상하 흰색 경기복을 왜 입어야 하는지 활꾼들조차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

현재 활쏘기대회 참가시 강요되고 있는 상하 흰색 복장 규정은 테니스 유니폼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활쏘기와 테니스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부 계층에서만 즐기던 귀족 스포츠였다는 점이 유일하다. 또 현재는 테니스 최고 권위라는 윔블던대회만이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흰색 복장 규정을 대한궁도협회가 모든 활터와 활꾼들에게 획일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 또 같다.

몇 년 전 충북 청주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흰색 한복을 입고 사대에 올라온 궁사를 복장 위반이라고 내쫓은 사건까지 있었으니 한복 입고 한식 뷔페에 들어갔다가 쫓겨난 신라호텔 사건과 무엇이 다른가.

각궁 대신 카본궁은 편리함을 내세워 허용하면서 개량한복은 물론 전통한복마저 일절 허용치 않는, 주객이 뒤바뀐 이중적 잣대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아무리 시대의 변화를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전통의 싹을 잘라내는 전통문화란 존재의 가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

왜곡된 활터문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서울 황학정과 전주 천양정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활터에는 ‘정간(正間)’이라는 정체불명의 목찰(木札)이 마치 신주(神主) 모시듯 사정(射亭) 건물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 활터마다 걸려 있는 정간(正間).

그러나 언제부터 존재했고 활쏘기와는 또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저 예절이라는 말에 활터를 드나들 때마다 절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1970년대 교문에서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하고 등교했던 중·고교생들처럼 활꾼들도 아무런 비판 없이 따르고 있다.

정간은 전라도 지역에서 1960년대 말 처음 시작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해방 전부터 존재했다고 하지만 어떠한 문헌이나 자료는 제시하지 못한다. 전통 활쏘기의 교본으로 불리는 『조선의 궁술』(조선궁술연구회, 1929년)에서도 활터 예절을 상세히 적고 있지만 정간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 것이 아니라고 막무가내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고 설사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구성원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근거와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남의 것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억지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는 도끼 들고 정간을 조각내고, 또 누구는 그를 제명하는 비극이 다시 반복될 수는 없다.

이 외에도 활터 안팎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왜곡된 활쏘기 문화는 자칫 제 얼굴에 침밷기와 같아 열거하기조차 민망하다.

그동안 활터 안팎에서는 우리의 전통 활쏘기가 국가무형문화재를 넘어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은 최소한 우리 활쏘기 문화의 본래 모습을 되찾으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다.

혹자는 전통은 만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억지 주장에 의한 왜곡된 관습이거나 사실관계도 따지지 않는 맹목적 관례까지 계승해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특히 원형의 보존·전승을 거부한 변형·왜곡된 전통은 이미 전통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이번 활쏘기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관련 단체는 물론 활꾼들 스스로 겸허한 자기비판을 통해 취하고 버릴 것을 구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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