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날의 벗, 유득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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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날의 벗, 유득공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8.1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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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㊲ 유득공, 박제가와 밤나무 아래에서 쉬며

가을 샘 흐느끼며 무릎 아래 지나가니         秋泉鳴歷膝
어지러이 솟은 산속 책상다리하고 앉았네      趺坐亂山中
낮에 먹은 술 저녁 무렵 올라오니             午飮晡來湧
활활 달아오른 귀, 단풍 닮았네               烘烘耳似楓
『아정유고 1』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덕무와 유득공은 가난과 굶주림을 함께 나눈 벗이었다.

박제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는 궁핍할 때 사귄 벗을 꼽고, 친구의 가장 깊은 도리로는 가난할 때 의논하는 일을 꼽는다.

가난하고 궁색할 때 사귄 친구를 ‘지극한 벗’이라고 하는데, 그 사이가 아무 허물이 없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기 때문일까? 또한 요행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서로 처한 상황이 비슷하고 겉모습이나 행적을 돌아다볼 필요가 없고 가난이 주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을 부여잡고 수고로움을 위로할 때는 반드시 먼저 밥은 먹었는지 굶었는지, 추위에 떨거나 더위에 지치지는 않았는지를 묻고, 그런 다음 집안 살림의 형편을 물어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일조차 저절로 입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진심으로 나를 측은하게 여기는 정을 느끼고 감격하는 바람에 마음이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덕무와 유득공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지극한 벗’이었다. 거리낌 없이 가난과 굶주림을 의논하고 진심으로 서로를 측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맹자가 밥을 사고 좌구명이 술을 샀다는 이덕무의 서글픔 속에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글 한 편을 통해 이와 같은 두 사람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 글은 이덕무가 이서구에게 보낸 편지다.

“내 집안에 있는 물건 중 가장 좋은 것은 다만 『맹자』 7편뿐인데 오랫동안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돈 200닢에 팔아버렸네. 밥을 배불리 실컷 먹고 희희낙락하며 유득공의 집으로 달려가 크게 자랑했네.

그런데 유득공 역시 오랫동안 굶주려온 터라 내 말을 듣더니 그 즉시 『춘추좌씨전』을 팔아버렸네. 그리고 술을 사와 서로 나누어 마셨는데, 이것은 맹자가 손수 밥을 지어서 내게 먹이고 좌구명(『춘추좌씨전』의 저자)이 친히 술을 따라서 내게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와 유득공은 서로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높여 칭찬하였네. 우리 두 사람이 1년 내내 이 책을 읽는다고 한들 어찌 굶주림을 조금이나마 모면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 글을 읽어 부귀영화를 얻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우연한 행운을 바라는 술책일 뿐이니 당장에 책을 팔아서 한때나마 굶주림과 술 허기를 달래는 것이 더 솔직하고 거짓꾸밈이 없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네.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 않은가!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맹자』를 팔아 밥을 사 먹고 『춘추좌씨전』을 팔아 술을 사 먹는 사이였으니 이덕무와 유득공은 진실로 궁핍함과 가난함과 굶주림과 추위를 함께 한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지극한 벗’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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