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미친 바보, 김덕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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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미친 바보, 김덕형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0.09.1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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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㊹ 규장각 아전 김덕형의 부채 그림에 붙여
김덕형이 화가 8명의 모임을 기념해 그린 ‘균와아집도’.
김덕형이 화가 8명의 모임을 기념해 그린 ‘균와아집도’.

새파란 한 줄기 연꽃 위                     靑靑荷一柄
간들간들 물새 앉았네                       裊裊魚鷹立
어여쁜 물고기 새끼 영리해                  魚兒可憐黠
마름 밑 잽싸게 비늘 감추네                 萍底隱鱗急
『아정유고 4』 (재번역)

규장각 아전 김덕형의 매죽도(梅竹圖)와 풍국도(楓菊圖)의 화제(畵題)

마른 소리 그윽한 향 붓 끝 가득                           乾聲暗馥筆尖盈
개(个) 자 모양 나부끼고 여(女) 자 모양 비스듬하네        个字飜飜女字橫
윤기 나는 천 척(尺) 비단 어이 얻어                       安得砑光千尺絹
부어교(鮒魚橋) 가 사는 김생 찾아갈까                     鮒魚橋畔訪金生
오구(烏桕)나무 소슬하여 그린 뜻 새로운데                 烏桕蕭蕭寫意新
듬성듬성 국화 피어 정신이 상쾌한데                       又添踈菊頓精神
현옹(玄翁: 심사정)은 죽고 표옹(豹翁: 강세황)은 늙어서    豹翁衰晩玄翁去
화파(畵派)의 인물 오직 이 사람뿐이네                     畵派人間秪此人
『아정유고 4』 (재번역)

[한정주 고전연구가] ‘벽(癖)’과 ‘치(癡)’의 느닷없는 예찬과 애호(愛好), 18세기 조선에 출현한 새로운 문예사조 중 하나다.

‘벽(癖)’은 무엇인가를 지나치게 좋아해 미친 듯이 탐닉하는 것이다. ‘치(癡)’는 너무 미련하고 우둔해서 미친 듯한 짓을 하는 것이다.

‘병질 녁(疒)’ 자를 부수로 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벽’과 ‘치’는 정상적이지 않은 비정상적인 상태, 즉 병적인 증상을 나타낸다. 일종의 병통으로 아프거나 미쳤다는 아주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18세기에 들어와서 일군의 지식인 그룹이 ‘벽’과 ‘치’에 관한 부정적인 의미를 일거에 해체하고 전복해버렸다.

‘벽’과 ‘치’에 대한 예찬과 애호는 특히 이덕무와 그 벗들로부터 시작되어 크게 유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벽과 치에 관한 기록을 남긴 사람을 찾아오면 대부분 이덕무와 그 벗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덕무는 책에 미친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看書癡)’가 별호였고 정철조는 돌에 미친 바보라는 뜻의 ‘석치(石癡)’를 자호로 사용했다. 더욱이 박제가는 ‘벽’을 예찬하는 최고의 기록을 남겼다. ‘백화보서(百花譜序)’가 그 글이다.

그런데 이 글의 주인공은 흥미롭게도 바로 이 시에 등장하는 김덕형이다. 이 글은 꽃에 미친 바보였던 화가 김덕형의 ‘화벽(花癖)’에 대한 이야기다.

“벽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이다. 대개 벽이라는 글자는 ‘병 질(疾)’ 자와 ‘치우칠 벽(辟)’ 자를 따라 만들어졌다. 병 가운데 무엇인가에 지나치게 치우친 것을 벽이라고 한다. 그러나 독창적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터득하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적인 기예를 습득하는 일은 오직 벽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김 군이 마침내 화원을 만들었다. 꽃을 바라보며 하루종일 눈 한번 꿈쩍하지 않는다. 꽃 아래에 자리를 깔고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손님이 와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반드시 미친 놈이거나 멍청한 놈이라고 생각해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조롱하며 욕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김 군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런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만다. 김 군의 마음은 세상 온갖 사물을 스승으로 삼고 있다. 김 군의 기예는 천고의 옛사람과 비교해도 탁월하다. 김 군이 그린 『백화보』는 꽃의 역사에 길이 남을 공훈으로 기록할 만하고 김 군은 향기의 나라에서 배향하는 위인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벽의 공적이 진실로 거짓이 아니다. 오호라! 저 두려워 벌벌 떨고 깔보고 업신여기는 데다 천하의 큰일을 그르치면서도 스스로 지나치게 치우친 병통이 없다고 뻐기는 자들이 김 군의 화첩을 본다면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김덕형은 꽃에 미쳐서 하루종일 꽃만 바라보는 벽이 있었기 때문에 꽃 그림에서만큼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덕무가 책에 미친 바보였기 때문에 문인이자 학자로 최고의 수준에 올랐다면 김덕형은 꽃에 미친 바보였기 때문에 꽃의 화가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 점에서 무엇인가에 미치지 않는다면 전문적인 기량을 드러낼 수도 없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수도 없다고 하겠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는 뜻이다. 무엇인가에 미쳐 본 사람은 다른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에게 쉽게 공감하고 교감한다.

책에 미친 바보였던 이덕무가 꽃에 미친 바보 김덕형을 가리켜 ‘당대의 화가로는 이 사람 뿐이다’는 최고의 예찬을 한 까닭 역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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