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弓)을 품은 지명…토템 신앙과 결합해 공동체 수호를 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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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弓)을 품은 지명…토템 신앙과 결합해 공동체 수호를 빌다
  • 한정곤 기자
  • 승인 2020.12.1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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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14개 지명 '활에서 유래'…산·강·길 지형 따른 마을이름 가장 많아
[그림=이지후]
[그림=이지후]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이 땅에도 이름이 있다. 지명(地名)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이름을 갖게 되지만 땅은 오랜 시간을 두고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이야기가 얽히면서 이름이 부여된다.

사람의 이름이 미래형이라면 땅의 이름은 과거형이거나 현재형이다. 자녀의 장수·건강·명예·출세 등의 바람을 담아 지어진 성명과 달리 지명은 과거 혹은 현재의 지리·문화·풍속 등을 주된 배경으로 한다.

따라서 지명은 땅의 역사이자 문화이며 그 지역 또는 지점을 상징하는 역사적·문화적·사회적·지리적 언어다. 공동의 기억과 상징을 통해 각인되는 의사소통 수단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명을 땅의 역사이자 문화를 아우르는 총합체라고 규정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오천년 역사에서 몇 차례 지명의 단절을 경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이두(吏讀)나 향가식(鄕歌式) 한자를 빌어 표기됐던 고유어 지명은 신라 경덕왕 16년(757년) 당나라식으로 고쳐지면서 문헌상에서 사라졌다. 이후 고려 태조 23년(940년) 주(州)·부(府)·군(郡)·현(縣)의 이름마저 당나라식으로 바뀌었고 조선 시대 태종 13년(1413년) 확립된 팔도제와 군현제를 바탕으로 일부 지명들이 충효를 바탕으로 한 유교 이념을 실천하는 지명으로 바뀌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한글이 창제되면서 한글지명과 한자지명이 함께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도나 지리지 혹은 문서에 기록하기 위한 지명은 여전히 한자였다. 다만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는 순한글 고유지명이 지속적으로 사용됐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행정구역개편과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토지조사사업과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한글지명은 또 일본식 한자지명으로 바뀌었고 새로운 지명도 생겨났다. 이때 고유지명은 문헌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부분이 소실됐다.

실제 국토지리정보원이 올해 전국 고시지명 10만725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순우리말 지명은 11.59%인 1만1771개에 불과했다. 고개·골·나루·내·들·마을·메·뫼·바위·섬·우물 등 고유의 단어 포함된 지명은 새터(273개), 절골(142개), 새말(110개), 안골(96개) 등이 고작이었다.

[자료=국토지리정보원]
[자료=국토지리정보원]

고유어 지명 외에는 한자어가 4만5961개, 고유어와 한자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혼합어 지명이 1만7657개였다. 그동안 한자 문화의 영향으로 고유어 지명보다 한자어 지명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활쏘기와 관련된 지명도 이 같은 변화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고유어인 활뫼·활골이 활산(활山)·궁골(弓골) 등으로 변했고 다시 궁산(弓山)·궁곡(弓谷) 등으로 바뀌었거나 바뀌어 가고 있다.

전국 고시지명 10만1591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활쏘기와 관련된 지명은 총 314개였다. 비율로는 0.31%다. 고시지명이란 공간정보관리법 제91조에 따라 국가지명위원회에서 결정한 지명을 말한다.

314개 지명은 활, 화살, 활터, 과녁이 직접 포함됐거나 기타 구전이나 유래에서 활쏘기와 관련이 있는 지명들을 추렸다. 단 한자 표기가 없고 유래도 기록되지 않은 지명은 제외했다. 음은 같지만 뜻이 전혀 다른 지명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활 궁(弓)’자가 들어간 활마을이라는 뜻의 궁동·궁촌과 활뫼라는 뜻의 궁산에는 집 ‘궁(宮)’자 들어간 궁동(宮洞)·궁촌(宮村)·궁산(宮山)이 많고 ‘활터’라는 의미의 사장(射場)도 모래사장을 의미하는 사장(沙場)이 더 많다.

대표적으로 전북 익산시·충북 진천군의 궁동(宮洞), 경기도 의정부시 궁촌(宮村), 서울 가양동의 궁산(宮山), 세종시 전동면 사장동(沙場洞)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부산의 엄궁동·태종대, 경남 하동의 시천, 강원도 강릉시 강릉고등학교 운동장인 쏠터 등은 활쏘기와 관련된 직접적인 유래나 설화가 있지만 고시지명이 아닌 탓에 제외했다.

314개의 활쏘기 관련 지명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전남이 58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북 50개, 경북 39개, 경남 38개, 충남 34개, 충북 27개 등으로 삼남(三南)지역에 246개로 전체의 78%가 집중돼 있다. 나머지는 강원 22개, 경기 17개, 제주 9개, 울산 5개, 광주 4개, 대구·서울·인천 각각 3개, 부산 2개 등이다.

시·군별로는 전북 진안이 10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북 익산(9개), 경남 하동·충남 보령(각 8개), 전북 고창·제주 서귀포(각 7개), 전남 고흥·경남 통영·경북 성주·전남 함평(각 6개), 전북 김제·부안·경북 김천·충남 태안·충북 청주·충주(각 5개) 등에 5개 이상의 지명이 있었다.

낱말별로는 활을 포함하고 있는 지명이 144개로 45.8%의 비중을 보였으며 화살이 42개(13.4%). 활터가 33개(10.5%), 시위·과녁이 각각 1개(0.3%), 기타가 93개(29.6%)였다.

지명별로는 사정(15개), 궁항(12개), 궁골(9개), 사장·궁동·활목(각 7개), 궁평(6개), 궁터·궁전·궁산(각 5개) 등이 상위 10위권을 형성했다.

활터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사정(射亭)이라는 지명은 또 달리 사장(射場)이라는 지명으로도 7개(2.2%)가 있었다. 사장골·사장동·사장밭동·사장터 등으로도 불리고 있었다.

관덕(觀德)이라는 지명도 3개가 있었는데 경북 김천시 지례면과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는 활을 쏘던 관덕정이 있었던 마을로 전해오고 있다. 전남 강진군 군동면은 한새 고개에서 이곳을 보고 활을 쏘면 덕을 본다 해서 관덕이라 불렸다는 유래가 전한다. 관덕정이라는 활터가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김천·의성과 달리 활터 여부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이외에 전북 익산시 함라면 금성리에는 활을 쏘는 과녁판이 있었다고 간성이라는 지명이 붙었고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의 공정(公亭)이라는 지명은 약 400년 전 시장터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귀공자들이 궁술을 연습하며 놀았다고 해 붙여진 지명이다.

고유지명으로는 수 백년 전에 활을 쏘고 활을 많이 걸어 놓았던 장소였다는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의 활거리와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대방리에는 조선 시대 중엽 아랫마을의 성궁에 연병장을 설치해 이 마을을 보고 활을 쏘았다는 의미의 활미기가 있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에는 과녁쪽불이라는 예쁜 지명이 있지만 유래는 물론 그 의미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따르면 쪽불은 안쪽불꽃의 준말이다. 불꽃이 만들어졌을 때 안쪽에서 생기는 경계가 뚜렷한 불꽃으로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영역이다. 유추해보면 과녁의 홍심이 아닐까 추측된다.

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의 성무정공원은 성주산 기슭에 있는 활터 성무정에서 유래됐다. 이곳에서는 조선 말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활을 쏘았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현재의 명칭은 1967년 성주산의 ‘성’, 무예의 ‘무’를 따서 성무정이 됐다.

활쏘기 관련 지명을 형태별로 분류하면 마을이 250개(79.6%)로 압도적이었다. 마을 외에는 섬 24개(7.6%), 산 18개(5.7%), 고개 10개(3.2%), 봉우리 3개(0.9%), 교통 2개(0.6%) 순이었으며 바위·골짜기·하천 등 기타가 7개(2.2%)였다.

소재별로는 산·강·들·길 등 지형에서 유래한 지명이 179개로 절반이 넘는 57%를 차지했고 활을 쏘는 곳인 활터가 76개(24%), 대나무 산지나 화살을 제작했던 곳이 23개(7.3%), 활과 화살이 관련된 설화가 14개(4.5%), 활과 화살을 보관했던 병기창이 5개(1.6%), 기타가 17개(5.4%)였다.

지형에서 유래한 지명이 많은 이유는 우리 국토의 70%가 산지이고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풍수를 배경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농경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산·강·들과 같은 자연이 지명의 소재가 됐던 당연하게 보인다.

마을 지명이 많은 이유도 품앗이를 비롯해 구성원 모두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농경사회에서 가족 다음으로 중요한 공동체 단위였기 때문에 강한 유대감이 표현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형에서 유래한 마을 지명은 자연을 숭배하는 토테미즘과 같은 원시신앙이 결합돼 뒷산이나 앞을 흐르는 강 혹은 바위나 나무 등이 수호신으로 여겨지면서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준다는 믿음의 산물로 여겨진다.

주목할 점은 활과 함께 원시 시대로부터 인류의 대표적인 무기였던 칼이나 창이 왜 아니냐는 점이다. 그것은 칼이나 창보다 활이 상대적으로 그만큼 더 친숙하고 거부감이 없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지형에서 유래한 마을 지명에는 마을의 형태 혹은 위치가 활의 목(項)처럼 생겼다는 궁항(弓項)이라는 지명이 12개(3.8%)로 많았다. 여기에는 궁항리·궁항소류지·궁항치 등도 포함돼 있다. 궁항이라는 한자지명과 달리 순우리말인 활목이라는 지명도 활목고개를 포함해 7개(2.2%)가 더 있었다.

둥글게 휜 활의 정탈목.
둥글게 휜 활의 정탈목.

궁항이라는 지형에 대해서는 경남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의 유래가 구체적이다. 약 200년 전 김씨가 입거해 보니 마을모양이 활형이라 하여 활 궁(弓)자를 따고 그 활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에 활목이라 부르고 한자음을 따서 궁항이라 칭했다고 한다.

전북 익산시 용안면 석동리는 산등성이를 따라 활과 같이 굽었고 전남 신안군 도초면 수항리는 활과 같이 생긴 산의 목(項)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여기서 목은 활의 목소에서 고자에 이르는 중간 부분으로 거의 90도가 꺾이는 정탈목을 지칭한다. 마을모양이나 산등성이가 둥글게 휘어져 있기 때문에 붙은 지명으로 해석된다.

전남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 궁항마을. 해변에 나온 지형이 활 같다 해서 활자를 넣고 마을이 움푹 들어간 길목에 있어 활목이라 했다는 유래가 전한다.

다만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의 활목(弓項)은 어떤 포수가 곰을 잡는데 활로 목을 쏘아 잡았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또한 전남 신안군 암태면 송곡리는 마을의 지형이 활처럼 생긴 것이 사람의 눈으로도 보인다 해서 활목(活目)이라 하는데 한자표기로 살 생(活)자에 눈 목(目)자를 썼다. 진도군 의신면 송정리 활곡도 한자표기가 활곡(活谷)이다.

한자 표기 과정에서의 오류이거나 아니면 『계림유사』에서 활쏘기의 중국음을 활색(活索)으로 표기했던 것처럼 중국음을 그대로 옮겨적으면서 활(活)로 표기한 것 아닌가 추정된다.

반면 활 모양을 하고 있는 귀목나무가 마을과 마을 사람들을 지켜준다고 생각해 마을 이름을 활인동(活人洞)이라 불렀다는 전북 진안군 진안읍 정곡리는 마을에 임중화(林中花) 또는 연화도수(蓮花倒水)의 묫자리가 있다 해 화림동이라 부르다 발음이 변해 활인동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진다.

궁항·활목 외에 마을이나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강·계곡·고개·길 등이 활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은 다양하다. 궁골이 9개(2.9%)인데 골의 한자 표기는 골(骨)·곡(谷)·동(洞) 등으로 마을마다 달랐다.

[그림=이지후]

궁동(弓洞)은 7개(2.2%)였으며 들 평(坪)을 사용한 궁평(弓坪)은 6개(1.9%)였다. 대산, 즉 큰 모양을 의미하는 대(岱)자가 들어간 궁터(궁터골·궁텃골)와 밭 전(田)자가 들어간 궁전(弓田)도 각각 5개(1.6%)가 있었다.

마을이 활 모양(전북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충북 단양군 가곡면 가대리))이라거나 계곡이나 산의 형태가 활처럼 휘어졌고(경북 봉화군 재산면 남면리·충북 충주시 대소원면 탄용리) 마을 앞에 활과 같이 생긴 들(전남 장성군 북일면 성덕리)이 있다는 의미다.

전북 부안군 동진면으로 지형이 활 또는 반달처럼 생겼다 해 궁월마을이라 불리고 있다.

이 가운데 전남 고흥군 금산면 신전리의 궁전은 앞 전(前)을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궁터라는 지명에서 오산시 궐동의 경우 한자 표기가 궁대(宮岱)인데 마을 지형이 弓자형으로 되어 있어 궁터(弓垈)이던 것을 지방 학자가 활 궁(弓)자보다는 집 궁(宮)자가 좋다 해 궁터(宮垈)로 바꿔 표기하고 있다.

고시지명은 아니지만 비슷한 사례로 전라남도 여수시 광무동도 조선 시대 활을 쏘는 곳이 있어 원래는 사정(射亭)이라 불렸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행정개편으로 서정(西町)이 됐고 1946년 궁동(弓洞)으로 바뀌었지만 1953년 다른 곳에 비해 가난한 인상을 준다고 해 ‘궁’자를 빼고 장군산(將軍山)의 장군이 무사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오늘날 광무동으로 개칭됐다.

앞서 지명변화를 통해 예로 든 궁산(弓山)은 궁산말(弓山村)·원궁산(元弓山)을 포함해 5개(1.6%)가 있는데 고유어 표기인 활뫼도 3개가 있다. 또한 서귀포시에는 제주도의 기생화산 ‘오름’이 들어간 궁산의 고유어 활오름도 있다. 이외에 고유어로는 궁말(3개), 활골(2개)이 있다.

활 모양을 한 지형이 있다면 화살처럼 생긴 지형도 있다. 시산(矢山)이라 불리는 지명이 대표적으로 광주시 남구 화정동 시산과 전남 고흥군 도양읍의 시산도와 시산나루터 등 모두 3개가 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 시산도.

이 중 시산도는 부속 섬인 솔섬(松島)에서 시산도를 바라보면 마을의 지형이 활처럼 생겼고 만조 때 바라보면 화살 모양의 돌무지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이 보인다고 전한다. 『해동지도』, 『해동여지도』, 『1872년 지방지도』, 『대동여지도』에는 보일 시(示)자의 시산도(示山島)라고 표기돼 있다. 지명의 역사는 조선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화살 시(矢) 시산도(矢山島)는 근현대에 와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남 밀양과 전남 보성의 살내라는 지명은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이 활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보성의 경우 가장 큰 정지냇물이 휘둘러 흐른다 하여 활천이라고 불렸지만 우리말로 풀어 살내라고 변경했다고 한다.

화살의 재료인 대나무가 많이 자라 지명이 된 경우는 죽도(竹島)와 대섬이 대표적으로 각각 3개다. 전남 강진군 칠량면, 충남 홍성군 서부면,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의 죽도는 모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죽(箭竹)이 많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경남 통영시 사량면과 충남 태안군 남면의 대섬은 조선 시대 대나무를 심어 화살을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하며 인천 강화군 화도면의 대섬은 임진왜란 때 화살에 사용하려고 대나무를 많이 베어간 후 대섬이라 했다.

그 외에 살티, 상전촌·하전촌, 상죽도·대죽도, 비양도, 전죽리, 죽도봉, 죽전산 등의 지명도 전죽이 많이 나거나 화살을 만들었던 곳들이다.

흔히 살곶이다리라고 부르는 서울 성동구 행당동 지명에도 화살 전(箭)자가 들어있다. 정확한 고시지명은 살곶이화해교다. 이 지역은 조선 시대 임금의 사냥터와 군인들의 훈련장 그리고 관마(官馬)를 기르던 말 목장이 있었다 한다.

태조가 태종을 향해 활을 쏘았지만 맞히지 못하고 화살이 땅에 꽂혀 화살이 꽂힌 곳이라 해 살곶이라 부른다고 전해진다. 화해교라는 말은 살곶이다리에서 태조와 태종이 화해의 자리를 만들었다는 유래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 살곶이다리.

그러나 이는 전설일 뿐이다. 이곳은 한강이 광나루를 지나 멍에 모양으로 휘어져 서쪽으로 흐르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중랑천이 내려와 합류함으로써 산봉우리의 수리(사리→살)처럼 뾰족한 곶을 이루고 있어 살고지라 하고, 이를 한자로 전곶(箭串) 또는 전관평(箭串坪)이라고 썼다고 지명유래집은 전한다.

서울 한강에는 곶이 2곳 있는데 영등포구에 또 하나가 있다. 한강이 서강을 지나 서쪽으로 흐르고 남쪽에서 북서쪽으로 흘러오는 안양천이 합류함으로써 곶을 이룬다. 이 곶은 길게 뻗치고 있다 하여 버들곶이라 하고 한자로 양화(揚花)라 하고 나루가 있어 양화진(楊花津)이라고 한다.

태조와 태종이 관련된 지명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의 살대울과 화시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의 살채이에서도 나타난다.

살대울과 화시래는 하나의 설화가 전해진다. 태종이 신하에게 명해 화살을 쏜 자리가 화시래이며 새가 떨어진 곳이 살대울이다. 태종이 그의 스승 운곡 선생을 찾아왔다가 만나지 못해 쓸쓸히 돌아가던 길에 서쪽을 향해 날아가는 기러기(혹은 소리개)를 보고 무관인 호반에게 쏘아 떨어뜨리면 새가 돌고 있는 지역을 주겠노라고 했다 한다.

호위하던 호반이 활을 쏘아 새를 땅에 떨어뜨렸는데 태종이 기뻐하며 새가 떨어진 부근 일대를 호반에게 하사했다. 그 후 이곳 사람들은 활(화살)이 떨어진 자리라 하여 궁실(弓失)이라 했으며 이곳을 흐르는 하천을 궁실천(弓失川)으로 부르다 음역해 화실천 또는 화시래로 불리워지게 됐다고 한다.

살채이는 고려 공양왕 원년(1389년) 12월 이성계가 고려 제33대 창왕(昌王)을 신돈의 아들이라고 이곳에서 죽여 살창이·살창리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 약 700년 전 고구려 공민왕 때 화살창고가 있어 살창이라 했는데 변천해 살채이라 했다는 다른 유래도 전한다.

이처럼 설화를 바탕으로 한 지명은 모두 14개인데 황당한 내용도 있지만 흥미로운 내용도 있다.

경남 밀양시 무안면 성덕리의 서근덤이라는 지명은 옛날 박곤(朴坤)이라는 장군이 말을 타고 지나다가 그 앞 강물에서 용 한 마리를 만나 활을 쏘아 잡으려다가 용과 크게 싸워 결국 용을 잡아 바위 위에 던진 것이 그대로 썩었다 해 서근덤이라고 불렀다 한다.

전남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의 열사(烈士)라는 지명은 마을 뒤에 궁성산이 있어 활을 버리고 화살을 쏜다 해 버릴 연(捐)자와 쏠 사(射)자를 따서 연사라 불렸다는데 고시지명의 한자는 또 다르다.

경기도 부천시 작동의 까치울(鵲洞 )은 신라 시대 김유신이 이곳 주변에서 활시위를 당겼는데 까치 한 마리가 그 화살을 물고 이곳까지 와서 앉았다고 하는 설화가 전해진다.

전북 군산시 옥도면의 관리도(串里島)는 본래 이름이 꽂지섬이었다. 무관의 고장으로 적을 무찌르기 위한 수많은 장군들이 활을 쏘아 적의 몸에 화살을 꽂아 댄다 해 꽂지섬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전남 목포시 산정동 삼학도.

전남 목포시 산정동의 삼학도(三鶴島)도 활쏘기와 관련이 있다. 『1872년 지방지도』(무안목포진)에 처음으로 지명이 나타나는데 섬에 무사와 그를 사랑했던 세 처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무사를 기다리던 세 처녀는 학이 되었지만 이를 모른 무사가 학을 향해 화살을 쏘았고 그 화살에 학이 맞아 떨어진 자리에 세 개의 섬이 솟아나 삼학도라 불렀다는 것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의 중구당이라는 지명은 마을 술집에 원근 한량들이 주야로 장구를 두드려 둥구당소리가 끊일 새 없었다고 해 둥구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중구당은 한자표기로 인한 복칭이다.

그러나 원래는 활과 관련된 지명이었지만 미고시지명이거나 전혀 다른 지명으로 불리고 있는 곳들이 많아 발굴·복원이라는 과제로 남는다.

부산의 엄궁동·태종대, 경남 하동의 시천, 강원도 강릉시 강릉고등학교 운동장인 쏠터 등은 활쏘기와 직접적인 유래나 설화가 있지만 고시지명이 아니다.

또한 대구시 북구 동화천(桐華川)도 『여지도서』를 비롯해 『대구읍지』 등 고문헌에는 ‘전탄(箭灘)’으로 기록돼 있다. ‘화살로 가득찬 내(川)’라는 의미다.

927년(고려 태조10년) 팔공산 일대에서 왕건 군대와 후백제 견훤 군대 간에 벌어진 공산전투에서 하천을 사이에 두고 양 진영에서 쏜 화살이 내를 가득 메울 만큼 치열한 전투였다고 한다. 즉 ‘전탄’ 또는 순수 우리말로 구성된 화살로 가득찬 내라는 뜻의 ‘살내’로 구전돼 왔다.

지금은 팔공산의 유명사찰 동화사(桐華寺)의 이름을 따 동화천으로 바뀌었다.

전남 함평군 엄다면 신계리의 생곡(生谷)도 원래 활을 쏘는 사장(射場)이 있어 사장촌으로 불렀지만 일제강점기 때 생수가 좋다고 해 현재의 지명으로 바뀌었다.

한편 국토지리정보원은 고유어 지명을 지명제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체계적으로 관리·보전하기 위해 전국의 미고시 지명과 국토개발로 인해 사라진 고유어 지명의 발굴과 일본식 지명의 정비에 관심을 쏟고 있다.

* 이 글은 지난 12일 전통활쏘기연구회에서 ‘활, 활터 그리고 공동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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