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白沙) 이항복① 이덕형과의 왜곡된 ‘관포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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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白沙) 이항복① 이덕형과의 왜곡된 ‘관포지교’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4.12.0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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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㉒
▲ 포천시가 제작한 오성과 한음 캐릭터. <포천시 제공>

[한정주=역사평론가] ‘관포지교(管鮑之交)’는 진정한 우정을 말할 때 사용하는 유명한 고사성어(故事成語)다. 여기에서 관포(管鮑)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섬긴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을 가리킨다.

그런데 조선에도 이 두 사람에 비견할 만한 우정을 나눈 두 사람이 있었다. ‘오성(鰲城)과 한음(漢陰)’으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이다.

어린이 책이나 만화의 단골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 탓에 이 두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 이항복과 이덕형이 처음 만난 때는 1578년(선조 11년)으로 이항복의 나이 23세, 이덕형의 나이 18세 때였다고 한다.

더욱이 이항복은 19세에 권율의 딸인 안동 권씨와 이미 혼인했고, 이덕형 역시 17세에 이산해의 딸인 한산 이씨와 혼인해 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오성과 한음’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성년이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는 얘기다.

이항복이 나고 자란 곳은 인왕산 아래 필운동이었고, 이덕형이 나고 자란 곳은 남대문 밖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을 가능성 또한 극히 적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 역시 감시(監試)를 치르는 과거시험장이어서 함께 어울려 놀면서 장난을 쳤던 소꿉동무라는 통상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어쨌든 이항복과 이덕형은 1580년(선조 13년)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그런데 정승(政丞)의 반열에 먼저 오른 사람은 다섯 살 연상이었던 이항복이 아니라 다섯 살 어렸던 이덕형이었다.

요즘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고 할지라도 자신보다 먼저 정치적 출세를 하면 시기나 질투를 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나이가 더 어린 친구가 자신보다 일찍 출세를 하게 되면 그와 같은 감정에 더욱 쉽게 휩싸일 수 있다.

그러나 이항복과 이덕형은 우정에 금이 가기는커녕 한 나라의 재상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서로 협조하고 격려해주었다. 자신의 공로를 뒤로 한 채 재상의 자리를 친구인 관중에게 양보한 포숙에 비견할 만한 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두 사람이 조정에 나아가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던 시대에 조선은 당쟁(黨爭)과 전란(戰亂)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다. 이 때문에 정쟁(政爭)으로 갈라지고 파당(派黨)으로 나뉘어져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였더라도 한 번 정치적 뜻과 입장을 달리 하면 서로 멀리하는 것도 모자라 원수 보듯이 하는 일 또한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러나 이항복과 이덕형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서로 신의(信義)를 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전란(戰亂)에 처해서는 서로 협력해 이항복은 병권을 쥔 병조판서로, 이덕형은 외교 무대에서 큰 활약을 펼쳐 나라와 백성을 구했다. 또 전란 이후 광해군 때에는 끝까지 정치적 뜻을 함께 하다가 두 사람 모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이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이항복 하면 이덕형을 떠올리고, 이덕형 하면 이항복을 떠올려 ‘오성과 한음’이라는 별호가 크게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이 ‘오성과 한음’이라는 별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항복의 호가 ‘오성’이고 이덕형의 호는 ‘한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성’은 선조(宣祖)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임금을 잘 모시고 전쟁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공적을 높게 사 이항복을 호성일등공신으로 봉하면서 내린 작호(爵號)이자 군호(君號)였던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서 비롯되었다. 이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이항복을 ‘오성 대감’으로 불렀다고 한다.

반면 ‘한음’은 이덕형의 실제 호였다. 이덕형의 호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항복의 호인 ‘백사(白沙)’에 대해서부터 알아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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