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白沙) 이항복② 이름 없는 강 나루터 노인의 호(號)를 탐하다
상태바
백사(白沙) 이항복② 이름 없는 강 나루터 노인의 호(號)를 탐하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4.12.15 1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㉒
▲ 자신의 삶과 마음이 온통 ‘흰 백(白)’으로 뒤덮인 모래사장 같기를 소망했기 때문에 이항복은 ‘백사(白沙)’라는 호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일까?

[한정주=역사평론가] ‘백사(白沙)’는 풀어보자면 ‘흰 모래’ 혹은 ‘하얀 모래사장’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떤 특별한 뜻이나 의미가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필자가 이항복이 남긴 글은 물론 그와 가깝게 지냈던 당대의 인사들이나 후대에 그를 기리고 글을 남겼던 문사들의 여러 기록과 문헌을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백사(白沙)’에 대해 특별히 언급한 내용을 보지 못했다.

다만 소설가 이청준이 1991년 12월29일자 <경향신문>에 남긴 ‘작호기(作號記)’를 통해 그 실마리를 확인할 수 있었을 따름이다.

소설가 이청준의 호는 ‘미백(未白)’이다. 이 호에는 ‘아직 센(흰) 머리가 아니다’ 혹은 ‘절대로 세어서는(희어져서는) 안 되는 머리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일찍 하얗게 머리가 세어 버린 이청준이 노모(老母)에게 큰절을 올릴 때마다 “절하지 말고 그냥 앉거라. 에미보다 머리가 센 자식 절을 받으려니 민망스러 못 당할 꼴이다” 하며 절을 피해 한사코 손을 내저으시며 만류하시는 것을 생각하고 지은 호(號)였다.

이러한 사연을 담고 있는 이청준의 수필이 바로 ‘작호기(作號記)’인데, 이 글에는 그의 친구이자 후배인 백야(白也) 김연식이라는 이의 호와 관련한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이항복의 ‘백사(白沙)’에 대한 일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진득한 친구는 허물어지기 십상인 우리살이를 쓸쩍 메워준다. 그는 짐짓 아닌 듯 말을 던지지만 그 말 속에 얼마나 많은 배려와 마음씀이가 담겨 있는지 지나보면 알게 된다. 그런 사람과 사귀다보면 내 삶도 절로 단단해져 가는 것 같다. 그 친구를 통해 뼈저린 모정과 우정을 다시금 느꼈다.

내 부질없는 나이 50에 가까워질 때부터 동향 지기(知己) 백야(白也) 김연식(金年植) 형은 연하자로서 내게 마땅히 부를만한 명호(名號)가 없는 것을 자주 아쉬워하곤 하였다. 나보다 4년이 아래인 그로선 이때까지처럼 계속 ‘선배님’이라고 부르기도 편치 않고, 그렇다고 막 허교(許交)나 선생(先生) 격으로 대하기도 뭣하다는 게 그가 내게 별호(別號)를 구하는 소이였다.

거기에 또 하나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앞에서도 이미 드러난 일이지만 그에겐 연전부터 그 ‘백야(白也)’라는 자작의 단정한 아호가 있었다. 준거(準據)나 취득에 썩 재미있는 곡절을 담고 있는 호였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