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와 큰 처남 백동수가 추구한 참된 삶과 진짜 글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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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와 큰 처남 백동수가 추구한 참된 삶과 진짜 글의 기준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4.12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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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67) 백동수에게 부치다
고희동. 산수. 한지에 수묵담채. 27×36cm. 1920년.
고희동. 산수. 한지에 수묵담채. 27×36cm. 1920년.

내가 남산 아래로 집을 옮기자 백동수가 여러 형제와 함께 찾아오다가 골짜기가 깊어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냥 돌아갔다. 백동수는 내게 절구(絶句) 한 수를 지어 보내 서글픈 뜻을 보였다. 나는 그 즉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보냈다.

꽃 떠다니는 시냇물 느릿느릿 흘러           花泛溪流出澗遲
물가 사립문, 나의 집 알기 쉽네              吾家易識水邊扉
산신령 때 묻은 세상 나그네인가 의심해     山靈却訝塵間客
일부러 길 잃고 돌아가게 한 것이네          故使雲深失路歸
『영처시고 1』 (재번역)

또 쓰다

석양 숲 가지에 가물가물                     西日隱林抄
지친 나무꾼 절로 노래하며 가네             樵勞行自謠
초가집에서 묵은 병 끙끙 앓고 있는데        病疴吟白屋
친한 벗(백동수) 푸른 다리에 막혀버렸네    親友滯靑橋
등불에 의서 찾아 뒤적이며                   燈火醫書閱
아우와 형 약즙 제조하네                     弟兄藥汁調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이여, 아! 한 해 저무니 道心驚歲晩
신령한 싹 어느 곳에서 자라고 있을까        何處長靈苗
『영처시고 2』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이덕무는 16세 때 수원 백씨와 결혼했다. 백동수는 수원 백씨의 큰 오빠로 이덕무의 큰 처남이 되었다.

백동수는 1743년생으로 1741년생인 이덕무보다 두 살 어렸다. 두 사람은 처남·매부 관계를 떠나 진심으로 서로를 내면 깊이 이해했던 벗이었다.

재물과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가난에 당당하며 욕심 없고 꾸밈없는 삶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무척 닮았다. 백동수는 젊은 시절 ‘야뇌당(野餒堂)’이라는 자호를 썼다. 이덕무는 ‘야뇌당’에 담긴 백동수의 뜻과 기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개 사람들은 세상사에 초탈해 어느 무리에도 섞이지 않는 선비를 보면 반드시 조롱하고 비웃는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얼굴과 생김새가 고루하고 옷차림은 세속을 따르지 않으니 야인(野人)이다. 또한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질박하고 행동거지는 세속을 따르지 않으니 뇌인(餒人)이다’라고 말하며 마침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 큰 처남 백동수는 고루하고 질박하며 성실한 사람이다. 성실한 성품 탓에 세상의 화려함을 사모하지 않고 질박한 성격 탓에 세상의 속임수를 좇아가지 않는다. 굳세고 우뚝하게 홀로 서서 마치 세상 밖에서 노니는 사람과 같다.

세상 사람 모두가 비방하고 매도하더라도 큰 처남 백동수는 조금도 ‘야인’인 것을 후회하거나 ‘뇌인’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느 누가 이것을 알겠는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다.”

‘야(野)’라는 한자는 들판 혹은 꾸밈없고 순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뇌(餒)’라는 한자는 굶주림을 뜻한다. ‘야뇌’의 뜻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백동수가 추구한 삶은 세상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 목숨과 바꾸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은 재물과 권력, 성공과 출세와 명예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러한 백동수의 삶을 세상 사람들은 비웃고 조롱한다. 하지만 오히려 백동수는 그 비웃음과 조롱과 업신여김을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그래! 나는 야인이고 뇌인이다. 어쩔 테냐!”하는 식이다.

야인’이란 곧 꾸밈없고 순박하며 가식이나 거짓이 없는 자연인이다. ‘뇌인’은 굶주림이나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세속적인 기준이나 세상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자유인이다. 야인과 뇌인, 곧 ‘자연인’과 ‘자유인’이야말로 이덕무와 백동수가 추구한 참된 삶과 진짜 글의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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