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궁극적 경지, 자득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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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궁극적 경지, 자득의 묘미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4.26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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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69) 벗들에게 주다
강세황, '송도기행첩' 중 '태종대', 1757년 추정.
강세황, '송도기행첩' 중 '태종대', 1757년 추정.

찾아오는 사람 모두 이름 높은 선비         來往盡名流
기이한 향내 온 방 가득하네                 奇香藹一室
겨울 가고 봄 바뀌는 사이                    冬春迭代謝
귀밑머리 듬성듬성 털 빠진 붓처럼 되었네  綠鬢禿如筆
원하건대 곧은 마음 길이 지켜서             願言貞素履
한평생 득실(得失) 함께 나누세              百年齊得失
기쁘고 즐겁게 술잔 마주하고                熙怡對罍爵
시원하고 여유롭게 책 펼쳐보세             蕭閒展籤袟
이른 새벽, 늦은 저녁                         斯晨又斯夕
높고 낮게 소리 내어 글도 읽어보세         伊吾事佔畢
영험한 마음은 고요한 수양에서             靈襟緣習靜
마음 가득 쌓이면 오묘한 이치 얻는다네    妙契在藏密
힘써 보세! 어려운 시절 우리 사귐           勗哉歲寒交
각자 진실한 마음 한결같이 품어보세        各自抱眞一
『아정유고 3』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이덕무가 1778년 나이 38세 때 지은 시다. 규장각 검서관이 되어 관직에 나가기 직전으로 이덕무가 추구한 기궤첨신한 시의 세계가 최고 정점에 달했을 시기다.

청나라 시인 원매는 창작의 즐거움은 ‘자득(自得)’에 있다고 말했다. 자득이란 오직 자신의 힘으로 깨달아 터득한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이미 터득한 것만을 터득하는 데 만족하고 자신이 터득할 것을 독자적으로 터득하지 못한다면 붓을 쥐고 시를 지을 때에도 결코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시에서 자득이란 스스로 깨닫거나 터득한 자신만의 글, 곧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시를 쓴다는 것이다. 원매는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는 “붓을 쥐고 시를 지을 때는 옛사람이나 다른 사람이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붓을 쥐고 시를 지을 때는 자아의 존재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옛사람과 다른 사람이 있게 되면 모방하거나 답습하게 되고 자아의 존재가 있어야 정신과 기운이 비로소 참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스스로 깨달아 터득하게 될까? 명나라 때 문인 원굉도는 이렇게 말한다.

“자득이란 배우고 익힌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위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오래도록 가슴속에 맺혀있던 것이 마치 홀연히 풀리듯, 마치 술에 취해 있다가 갑자기 깨어나듯, 마치 가득 찬 물이 별안간 터지듯 깨닫거나 터득할 수 있을 뿐이다. 마음속에 오래도록 묵혀있던 실마리가 시기(時機)와 경지(境地)와 우연히 만나 느닷없이 시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나와야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시다.”

자득이란 자연스러워야 하고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이와 비슷한 이치에서 원매는 말년에 스스로 깨달아 터득한 시 쓰기의 이치를 이렇게 말했다.

“애써 억지를 시를 지으려고 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자칫 언어의 감옥에 구속당하기 쉽다. 차라리 감정이 분출하고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시를 쓰지 말라. 자득한 것이 나를 찾아올 때까지 묵히고 기다리고 또 묵히고 기다려라. 그렇게 하면 비록 한 달에 겨우 한두 편의 시밖에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마침내 가장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시를 자유롭게 지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창작의 궁극적인 경지는 자득에 있지만 그것은 절대로 “분주하게 서두르고 성급하게 내달린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덕무의 자득, 곧 기궤첨신한 시가 탄생한 비밀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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