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까지 확장되는 한반도 활쏘기 역사…울산 반구대 암각화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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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까지 확장되는 한반도 활쏘기 역사…울산 반구대 암각화 재조명
  • 한정곤 기자
  • 승인 2021.10.2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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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여년 전 암각화에 활쏘는 사냥꾼 선명…한반도 활 기원 찾기 모색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 [사진=한정곤 기자]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 [사진=한정곤 기자]

한반도 활쏘기 역사가 삼국시대에서 더 멀리 선사시대로까지 확장된다. 그동안 고래에 집중됐던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그림 가운데 최근 활쏘는 사냥꾼이 부각되면서 뒤늦게 한반도 활의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활쏘기 그림은 2000여년 전 고구려 고분벽화였다. 울산 반구정 암각화는 이보다 5000여년 앞선 7000여년 전의 선사시대 유물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이전의 활쏘기 유물로는 화살촉이 유일했다. 나무로 만든 활은 잔존이 어려운 유기물로 형태가 남아있지 않지만 돌로 만든 화살촉은 1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제주도 고산리 신석기 유적이 가장 오래됐다. 이보다 앞서 1만8000년 전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도 화살촉 용도로 사용됐을 슴베찌르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신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보다 시기적으로는 훨씬 앞서지만 활쏘기 가능성만 추정할 수 있었던 화살촉에 이어 구체적인 그림이 확인되면서 한반도 활쏘기 역사를 선사시대로 끌어올린 것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활 유물은 고구려 시대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평양에서 출토된 뼈로 만든 활채다.

전 세계적으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시부두 동굴에서 발견된 동물뼈 화살촉이 약 6만4000년 전으로 추정돼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화살촉으로 기록돼 있다. 지난해에는 호주 그리피스대 인류진화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미셸 랭글리 박사가 이끄는 국제연구진이 스리랑카 열대우림 파히엔 레나 동굴에서 4만8000년 전의 활과 화살촉을 발견하기도 했다. 화살촉은 시부두 동굴에 이어 두 번째지만 활은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활쏘기 그림은 1만5000년~2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북구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1만3000년~1만5000년 전 프랑스 남부 라스코 동굴 벽화가 가장 오래됐다.

한반도 최초의 활쏘기 그림이 전해지는 반구대 암각화는 동국대학교 박물관 울산 학술조사단에 의해 50년 전인 1971년 12월25일 발견됐다.

울산지역의 불적(佛蹟) 조사를 위해 대곡리 반구대 부근의 사지(寺址)를 탐사하던 중 마을 유지인 한학자 최경환 씨로부터 절벽 아래 바위에 희미한 형태의 무언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 1년 전 천전리 암각화를 발견한 데 이어 대곡천 하류에도 호랑이 그림이 있는 바위가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라 확인 결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4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상부 쪼기 기법(彫琢技法)의 기하학무늬와 각종 인물상·동물상, 하부 선각기법(線刻技法)의 물상과 명문 등이 새겨졌다. 고래와 산짐승을 수렵하며 살던 사람들의 경험이 표현된 것으로 어로 또는 사냥의 성공과 잡은 동물에 대한 영혼의 속죄에 이어 환생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고 각 짐승들의 행동특성, 유효한 사냥방법, 해부학적 지식, 고기의 질과 분배를 가르치기 위한 교육 등을 목적으로 제작됐다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제작시기는 약 7000년 전인 전기에서 중기 신석기 시대로 고구려 구분벽화보다 더 오래된 선사시대다.

그림은 사람 8점, 고래·물고기·사슴·호랑이·맷돼지·곰·토끼·여우·늑대 등의 동물 120여점, 고래잡이하는 배와 어부들·사냥하는 광경 5점, 기타 명칭 불명의 동물 20여점 등 모두 200여점이다.

이처럼 다양한 그림들 가운데 암각화 오른쪽에 손에는 활을 들고 노루·늑대·사슴 등의 동물 3마리와 마주하고 있는 사람 그림이 선명하다. 이보다 크기는 작지만 그 위에 같은 모습의 또 다른 그림이 있고 활을 당겨 만작하고 있는 듯한 사람도 보인다. 모두 활을 쏘는 사냥꾼 그림이다. 이들 앞에는 노루나 사슴으로 추정되는 동물이 그려져 있다.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고 있는, 앞서 발견된 천전리 암각화에도 같은 모양의 그림이 1점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모사도. [울산반구대박물관 제공]
울산 반구대 암각화 모사도. 아래 세 개의 붉은 원 안에 활을 쏘는 사냥꾼이 보인다. [울산암각화박물관 제공]

사냥꾼 앞에 그려진 사슴과 노루는 선사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는 짐승 뼈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온순한 초식동물로 주된 사냥 대상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개체수가 많고 무리 지어 서식하며 사냥할 때 맹수보다 위험 요소가 적기 때문이다. 호랑이·멧돼지·사슴·노루 등 다양한 동물이 그려져 있지만 활쏘는 사람이 가까이 그려져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냥은 전기 구석기 시대부터 확인되고 후기 구석기 시대에 이어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찌르개, 창, 활, 화살촉 등 다양한 사냥 도구를 이용했음이 발굴 유물들을 통해 확인된다. 반구대 암각화에서도 여러 가지 사냥 장면이 보이는데 선사시대 대표적인 사냥 도구들이다.

김경진 울산암각화박물관장은 ‘선사시대 사냥과 도구의 사용’이란 논고에서 “활은 구석기 시대 후기부터 나타나는 사냥용 도구”라며 “활의 발달은 울창한 숲과 관련된 환경적 제약에 적응한 결과”라고 말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라스코 동굴 벽화에 그려진 활은 길이가 궁사의 키와 같거나 더 큰 장궁이지만 반구대 암각화의 활은 절반에 불과하다.

앞서 암각화를 보았던 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는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활 그림은 거의 궁사의 상체와 비슷한 길이”라며 “세상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큰 탄력을 내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각궁과 비슷한 형태”라고 말했다.

프랑스 남부 라스코 동굴 벽화에 그려진 활.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활보다 길이가 길다.
프랑스 남부 라스코 동굴 벽화에 그려진 활.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활보다 길이가 길다.

그러나 반구대 암각화에서 활을 든 사냥꾼 그림은 전체 암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50년 동안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특히 지난 2019년 울산암각화박물관이 특별기획전 ‘대곡천 사냥꾼’을 개최하며 반구대 암각화를 통해 선사시대 사냥은 물론 사냥꾼들이 사용한 그물, 창, 울타리, 덫, 함정 등과 함께 활을 집중적으로 소개했지만 재조명하는 작업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비슷한 시기 천전리 암각화를 동국대 학술조사단에 제보했던 최경환 씨의 막내아들 최원석 씨가 활을 배우면서 고구려 고분벽화보다 오래된 활쏘기 그림이 있다는 사실이 울산 고헌정 사원들에게 알려졌고 이후 울산시궁도협회와 사단법인 활쏘기문화보존회를 중심으로 한반도 활쏘기 역사 다시 쓰기가 모색되고 있다.

지난 8월 말 이틀에 걸쳐 ‘한민족 활의 기원 찾기’를 주제로 예비조사 활동을 시작한 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한민족 활의 기원 찾기 반구대 활쏘기 재연행사’가 진행됐다. 반구대 앞 모래톱에 과녁을 설치하고 석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시대별 복장을 갖춘 궁사들의 활쏘기 시연이었다.

행사를 주관한 김동욱 울산시궁도협회 전무이사는 “7000년 전 새긴 반구대 암각화의 활쏘기 그림이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활쏘기라는 사실을 알리고 반구대가 이 땅의 활쏘기 기원이라는 점을 홍보하는 영상 제작을 위해 기획한 행사”라고 말했다.

나영일 활쏘기문화보존회 회장(서울대 교수)은 “반구대 암각화 학술논문이 100여편에 이르지만 단군 고조선보다 앞선 우리의 활쏘기 역사를 재조명하는 논문 하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면서 “비록 늦었지만 반구대 암각화 발견 50주년이 되는 올해부터 홍보와 연구를 통해 한민족 활의 기원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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