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순간 현실은 가상이 되고 가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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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순간 현실은 가상이 되고 가상은 현실이 된다”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3.21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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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②김만중 『구운몽』…현실의 삶과 가상의 삶Ⅲ

[한정주=고전연구가] 장자와 나비가 분명한 구분이 있는 것처럼 양반과 노비 그리고 보통 사람과 재벌도 분명한 구분이 있다. 그런데 노비가 양반을 욕망하고 보통 사람이 재벌을 욕망하는 순간-마치 장자가 나비가 된 것처럼-‘물화(物化)’, 즉 사물의 변화가 일어난다.

욕망하는 순간 노비에게 양반의 삶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세계가 아니다. 보통 사람에게 재벌의 삶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세계가 아니다.

물론 양반이 노비의 삶을 욕망하고 재벌이 보통 사람의 삶을 욕망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욕망하는 순간에도 노비에게 양반의 삶은 현실의 삶이면서 여전히 가상의 삶이고 존재하지만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고 보이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다.

보통 사람에게 재벌의 삶은 현실의 삶이면서 여전히 가상의 삶이고 존재하지만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고 보이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다. ‘욕망과 꿈’, ‘현실의 삶과 가상의 삶’,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사이의 이 딜레마가 욕망을 둘러싼 모든 희극과 비극의 씨앗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이같은 딜레마를 아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송강호 가족과 이선균 가족의 관계를 통해 이 문제를 보면 욕망을 둘러싼 희극과 비극을 한층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송강호 가족에게 이선균 가족의 삶은 현실이지만 가상이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계,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다. 마찬가지로 이선균 가족에게 송강호 가족의 삶은 현실이지만 가상이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계,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다.

그런데 송강호 가족 중 아들 최우식이 이선균 아들의 과외선생이 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제 송강호 가족은 이선균 가족의 삶과 세계를 욕망하게 된다. 송강호 가족이 이선균 가족의 삶과 세계를 욕망하는 바로 그 순간 이제 그 세계는 그들에게 현실의 삶이자 존재하는 세계 그리고 보이는 세계로 변화한다.

하지만 또한 송강호 가족에게 이선균 가족의 삶과 세계는-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쳐도-여전히 가상의 삶이자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도 하다. 현실이지만 여전히 가상이고 존재하지만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보이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 딜레마가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송강호 가족과 이선균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비극의 씨앗이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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