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55년 만의 처녀시집…김재원의 『깨달음으로 뜨는 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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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55년 만의 처녀시집…김재원의 『깨달음으로 뜨는 별 하나』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5.01.22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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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원 시인.

시인 김재원이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데뷰했을 때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었다.

최근 처녀시집 『깨달음으로 뜨는 별 하나』(문화발전소)를 출간한 그는 이제 70대 중반에 들어서 있다.

데뷔 55년 만에 처녀시집을 내는 시인은 아마도 김재원이 처음이고 마지막일 게다.

군사문화시절 치열하게 저항시를 써오던 김재원은 1970년대 초반 가정과 직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제에 쫓겨 절필을 했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저항시를 써오던 그의 개혁적 기질은 인류의 절대 약자인 여성의 편에 서게 된다. 절필 이후 그의 이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여성인권운동가인 동시에 여성잡지 발행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여성잡지 발행인으로서의 김재원의 활동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로 표현된다.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던 시절 칠언절구라는 찬사와 함께 ‘아내사랑 대변인’이라는 간질간질한 닉네임도 얻었다.

그때부터 시인이라기보다 잡지 발행인, 방송인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여성지 『여원』을 인수해 정상에 올려놓았는가 하면 『신부』, 『뷰티라이프』, 『젊은 엄마』 등 4개의 여성지와 『직장인』과 『소설문학』을 비롯한 8개 잡지의 발행인으로서 ‘잡지황제’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KBS TV ‘8시에 만납시다’의 MC를 비롯해 여러 방송의 메인 프로그램에도 MC 또는 출연자로 대중 앞에 섰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글로벌 잡지의 국내 진출과 잡지 유통 실패 등으로 1990년대 중반에는 『여원』도 접고 인터넷에서만 얼굴을 보이며 소리 없이 지내왔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불쑥 『깨달음으로 뜨는 별 하나』를 들고 시인의 자리로 귀향했다.

시집에는 군사문화시절 그가 얼마나 겁 없이 지독하고 치명적인 저항시를 써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데뷔 이후 55년간 시집 출간 권유를 수도 없이 받았을 김재원이 70대 중반의 나이에서야 처녀시집을 내는 데 대해 주위에서는 이제 자신을 정리하는 것 아닌가 할 정도다.

시집은 3부로 나뉘어진다. 1부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세상을 용서하고’ 등 선(禪)의 체취가 풍기는, 최근 5~6년 사이에 쓰여진 신작들이다. 2부 ‘몸 부딪는 비둘기’는 결혼 이후 그가 생활인으로 살며 아내와 살림 얘기 등 절필할 때까지 써온 생활의 아기자기가 묻은 시들이다. 3부 ‘당분간’은 그의 저항시 묶음이다.

김재원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입춘에 묶여 온 개나리’는 ‘참여시의 거대한 뿌리’라고 불리는 시인 김수영이 1960년대 잡지 『청맥』의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라는 제목의 시평(詩評)에서 “나는 김재원의 이 작품을 보며 무서워지기까지 했고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고 격찬할 정도로 당시 화젯거리가 됐던 시다.

문학평론가 심상운은 김재원의 시집을 “4.19의 시편들을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김재원의 시는 1980년대 절정을 이룬 민중시의 뿌리가 되었다”고 평했다.

특히 ‘당분간’에 대해서는 “당시 이 시가 1962년 4월19일자 경향신문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김재원 시인이 민주주의를 향해 온몸으로 돌진하는 전사(戰士)시인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고 밝혔다.

김재원의 시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저항시인으로만 불리는 것을 아쉬워한다.

‘모국어를 가르치러 떠난 아내가 / 내게 가르친 텅 빈 새벽을. / 아 모음처럼 비어가는 연대(年代)를. / 나는 열심히 마주 안아본다. / 베개만 두고 나간 아내의 모국어. / 나는 아침마다 비어 있는 베개다. / 아내가 집에 두고 나간 모국어다.’

짧게 인용한 이 시는 ‘아내의 모국어’이다. 국어 교사인 아내가 두고 나간 텅빈 새벽. ‘나는 아내가 두고 나간 모국어다’에서 우리가 만나는 에스프리의 비약은 그가 서정시인으로서도 충분하다는 증명이다.

인생파(人生派)의 시라고 해야 옳을 ‘가을 국전’에서의 그의 메타포어는 또 비상하기 시작한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 그 동안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 엽서로 띄워 버릴 인사는 아니다. / 깊이 감춰 둘 계명(戒名)도 아니다. / 잘 그려 논 한 폭의 그림이다. / 다시 그려도 비슷한 화폭이다. / 거머리처럼 소매 끝에 매달려도 보았다. / 낙엽처럼 가볍게 돌아서도 보았다. / 한 발자국만 이제 물러서자. / 가을국전 구경하듯이. / 해마다 보는 그림 다시 보듯이. / 그저 평범한 관객이 되어. / 와도 그만 가도 그만 손님이 되어.’

비슷한 계열의 시 ‘뒤늦게 내리는 눈’에서 김재원은 거의 센치멘탈리즘에 가까운 독백으로 흰 눈 속에 서 있다. 김재원 시의 서정성을 강조하는 시이기도 하다.

 

‘소유하지 말자. 손을 벌려 잡아 보아도 형체 없이 스러져 버리던 욕심. 나는 언제고 빈손이자. 미소같이 엷은 얼룩만 남기고 스러져 버리던 눈발처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나는 언제고 빈 손이자. 명함만 남기고 무너진 경력처럼, 유서만 남기고 중지된 인생처럼, 보이진 않으나 실수 없는 죽음처럼.’

김재원은 사업 실패 후 인터넷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올해초부터 ‘女元뉴스’라는 이름의 매체를 론칭해 운영하고 있다. ‘女元’의 ‘여’자를 으뜸원자(元)로 바꿈으로서 ‘여성이 제일인 시대’ 창출에 앞장서려는 것 같다.

여권(女權)이 땅에 떨어졌던 시절 ‘아내를 사랑하라’는 칠언절구로 한 시대 이 나라 여성들의 삶에 뚜렷한 이정표를 찍었던 김재원이 이제 ‘女元’으로 바뀐 인터넷 매체에서 이 나라 여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여성계가 그의 복귀를 눈여겨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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