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사회의 무의식적인 인식 체계가 만든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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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사회의 무의식적인 인식 체계가 만든 마음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5.2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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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④ 이탁오 『분서(焚書)』…내 인생은 한 마리 개와 같았다Ⅱ

[한정주=고전연구가] 장자가 말한 ‘성심’은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초자아’이고 푸코식으로 표현하면 ‘에피스테메’라고 해석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는 “이상과 가치, 금지와 명령, 도덕과 관습, 선악(善惡)과 같은 양심의 소리 등 매우 복잡한 체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심리적 대리자”(『정신분석용어사전』)이다. 이 초자아를 통해 우리는 자기를 관찰하고 평가하면서 자신을 비판하거나 책망하거나 징벌을 가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칭찬을 하거나 보상을 주어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초자아가 대부분 무의식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프로이트는 수많은 임상적 관찰을 통해 “자기 안에 있는 초자아는 가장 낮은 것뿐 아니라 가장 높은 것도 무의식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내가 의식하기 이전에 혹은 내 의지가 작동하기 이전에 이미 나를 지배해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심리적 대리자 혹은 무의식이 바로 ‘초자아’라는 얘기다. 퇴계 이황 하면 존경해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경우 불경한 마음을 품은 것처럼 죄책감이 드는 것, 그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다.

푸코의 ‘에피스테메’는 구성된 마음 혹은 만들어진 마음을 장자의 ‘성심’이나 프로이트의 ‘초자아’보다 훨씬 더 시대적·사회적 맥락에서 다룬다. 에피스테메는 “특정한 시대 혹은 특정한 사회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인 체계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 사물들의 가치나 질서를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기초”(『문학비평용어사전』)를 말한다.

특정한 시대나 특정한 사회의 에피스테메를 통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 사물들을 본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퇴계 이황하면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경우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한국 사람의 당연한(무의식적인) 마음이지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 또는 미국 사람이나 영국 사람, 독일 사람이나 프랑스 사람의 당연한(무의식적인) 마음일 수는 없다.

그렇게 보면 퇴계 이황은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내 마음은 내가 만든 마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무의식적인 인식 체계, 즉 ‘에피스테메’가 만든 마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사회가 만든 이 무의식적인 인식 체계는 마치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그것에 우리는 그만큼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익숙해도 너무나 익숙해서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조차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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