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白湖) 윤휴② ‘자신의 이름을 돌아보고 새겨진 뜻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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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白湖) 윤휴② ‘자신의 이름을 돌아보고 새겨진 뜻을 생각한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1.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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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㉕
▲ 윤휴의 간찰.

[한정주=역사평론가] 윤휴의 원래 이름은 정(鍞)이었다. 그런데 광해군 때 인목대비를 폐해 서인(庶人)으로 강등하라는 이른바 ‘폐모론(廢母論)’을 상소한 이정(李挺)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윤휴의 아버지는 정(鍞)과 정(挺)의 소리가 같다고 해 항상 “우리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그러한 자와 같게 할 수 있겠는가” 하며 고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개명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선친이 남겨준 이름을 쉽게 고칠 수 없었던 윤휴는 오랫동안 고심해오다가 이때에 이르러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휴(鑴)로 고쳤다. 그리고 휴(鑴)란 글자는 대개 ‘큰 종’이나 ‘솥’의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그 무겁고 강하고 웅장하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성질과 그 속이 텅 비어 환히 볼 수 있고 또한 포용할 수 있는 덕(德)을 취택하려고 한다는 뜻을 밝혔다.

“내 이름이 정(鍞)인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다. 내가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당시 아버지는 단지 나의 아명(兒名)을 지었을 뿐이다. 어렸을 때 아명(兒名)을 부르고 관례(冠禮)를 치르고 나면 관명(冠名)이나 또는 자(字)를 짓는 것이 우리나라의 풍속이다.

어머니에게 들어보니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이름을 정할 뜻이 있어서 ‘경 혹은 정(鍞)’ 자를 골라서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 글자로 우리 아이의 이름을 지으려고 한다. 그런데 경(鍞)은 본래 갱(鏗)자로 음(音)이 맞지 않고 만약 정(貞)자의 음(音)으로 부르다면 괜찮겠지만 이 또한 이정(李挺)이라는 자의 이름과 소리가 같다. 우리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그러한 자와 같게 할 수 있겠는가.’

이정(李挺)이라는 자는 당시 조정의 관리로 서궁(西宮: 인목대비)의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그 자를 미워하셨다. 아아! 아버지의 말씀이 이와 같으니 아버지의 뜻을 가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나는 강보(襁褓)에 싸여있던 갓난아기였다. 또한 여러 형제와 나이 많은 어르신은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했다. 이에 정(鍞)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행세한 지가 지금 25년이나 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 이름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의 환하게 밝은 마음이 나 자신에 와서 막혔으니, 아아! 이러한데도 오히려 아버지의 뜻을 계승했다고 하겠는가. 자식된 몸으로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밝지 못한 일이고, 이미 알고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이다.

예전에 나의 벗 이상여(李相如)가 여러 차례 내게 말했지만 내가 어리석고 어두워 살피지 못했다. 지금에 이르러 차츰 지식을 갖췄지만 또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 것을 알고 일찍이 몇 번이나 사람들에게 상의하고 깊이 헤아려보았다.

그렇지만 데면데면 말하고 취지가 명백하지 않아 아버지의 뜻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름을 중요하게 여겨서 ‘만약 고쳤다가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다면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의 본뜻을 잃게 될 것이다’고 해 곧바로 행하지 못했다. 더욱이 내 마음에는 홀로 다시 이름을 고치는 것이 슬프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비록 일찍이 이름을 고쳐야겠다는 것을 잊은 적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누군가 나의 속마음을 일깨워주고, 더불어 생각이 감개(感慨)하고 애절해져서 스스로 그만 둘 수가 없다. 이에 이름을 바르게 고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로써 장차 여러 벗들에게 맹세했다.

자서(字書)를 고찰해보면, 휴(鑴)라는 글자는 ‘대종(大鍾: 큰 종)’이라고 하였다. 또한 ‘정(鼎: 솥)’이라고 하였다. 그 글자를 만든 뜻을 궁구해보면 말과 같은 형상을 하고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특이한 짐승을 ‘휴(雟)’라 이름 한다고 하였다. 대개 이 짐승은 매우 큰데, 휴(鑴)가 대종(大鍾 : 큰 종)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정(鍞)이라는 이름을 바꿔서 휴(鑴)라고 부르니, 큰 종의 뜻을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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