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실현 불가능한 ‘비극성’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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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실현 불가능한 ‘비극성’의 늪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9.19 0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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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⑦ 테네시 윌리엄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욕망한다’는 말의 의미Ⅲ

[한정주=고전연구가] 블랑시의 욕망에는 타자인 미치의 욕망이 직간접으로 개입되어 있다. 미치를 통해 새로운 삶을 욕망하는 블랑시에게 중요한 것은 미치와의 관계에서 육체적(성적)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미치가 자신의 가치를 욕망하고 사랑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블랑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을 진심으로 존중해주고 사랑해주는 미치이다. 자신을 갈망하는 미치의 욕망을 블랑시 역시 욕망할 정도로 미치는 그녀에게 충분히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블랑시에게 미치는 “이 세상에 몇 안 남은 타고난 신사”였기 때문이다. 블랑시에게는 오직 미치만이 “최악의 악몽 속에서도 결코 그려본 적이 없는” 초라하고 궁색한 삶과 “짐승같이 먹고, 짐승처럼 움직이고, 짐승처럼 말하는” 야만적이고 천박한 욕망만이 난무하는 지옥 같은 빈민가 ‘극락’에서 자신을 욕망하고 사랑하고 인정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미치를 제외한 극락의 모든 사람들, 특히 스탠리와 그 주변의 친구들처럼 가난하고, 비천하고, 야만적이고, 천박한 짐승 같은 사람들의 욕망을 블랑시는 원하지 않는다. 블랑시의 욕망은 미치와의 결혼을 통해 지옥 같은 ‘극락’에서 하루라도 빨리 탈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블랑시를 갈망하는 미치의 욕망은 ‘타락하지 않은 정숙한 여자’ 블랑시이다. 그렇게 자신을 갈망하는 미치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에 블랑시는 더욱 더 자신을 ‘타락하지 않은 정숙한 여자’로 감추고 포장할 수밖에 없다.

블랑시가 욕망하지만 또한 타자의 욕망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는 미치의 이 욕망이 바로 언제나 희극성과 함께 찾아오는 욕망의 비극성, 즉 ‘실현 불가능성’의 원천이다. 블랑시가 욕망하는 타자, 즉 미치의 욕망 때문에 미치의 욕망과 블랑시의 욕망이 어긋났을 때 그 욕망에는 불가피하게 파국의 비극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이와 같은 인간관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모든 욕망, 즉 돈, 권력, 미모, 명예, 지위, 출세, 행복 등에는 타자의 욕망이 직간접으로 개입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욕망한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것입니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의미에서 타자의 욕망과 나의 욕망은 비례한다.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내가 욕망한다면 다른 사람이 욕망하지 않은 것은 나 역시 욕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정한 대상을 욕망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대상의 희소가치는 높아진다. 희소가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대상에 대한 욕망의 강도는 더욱 더 강해진다. 그런데 희소가치가 높아지고 욕망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그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더 낮아진다.

명품(브랜드)의 소비 심리를 예로 들어보자. 특정 명품을 욕망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명품의 희소가치는 높아진다. 희소가치가 높은 명품일수록 그 명품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가 된다. 명품을 소유하는 사람이 소수일수록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강도는 더욱 더 강해진다. 하지만 명품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확률은 낮아지기 때문에 명품에 대한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더 희박해진다.

우리는 명품에 대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에 명품에 대한 타자의 욕망이 강할수록 명품에 대한 우리의 욕망 역시 더 강해진다. 반대로 특정 상품에 대한 타자의 욕망이 낮으면 낮을수록 우리의 욕망 역시 더 약해진다. 그리고 타자가 욕망하지 않으면 우리도 욕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금과 다이아몬드를 욕망하지 흙과 돌멩이를 욕망하지는 않지 않은가.

욕망하는 것을 내가 욕망하고 내가 욕망하는 것을 타자가 욕망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의 욕망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비극성’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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