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으로 위험하고 불온한 것’…완전히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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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위험하고 불온한 것’…완전히 새로운 시작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10.1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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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⑧ 마키아벨리 『군주론』…새로운 세계의 질서와 영토Ⅰ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

[한정주=고전연구가]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였던 김수영은 4·19혁명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1960년 5월 중순 어느 날 이 혁명은 ‘배신의 혁명’이 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 순간 김수영은 절박한 심정으로 펜을 휘둘러 한 편의 시를 원고지에 휘갈긴다. 이때 탄생한 시가 김수영을 대표하는 시 가운데 한 편인 「육법전서와 혁명」이다.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 불쌍한 백성들아 /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 /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뿐이다 / 최소한도로 /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 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를 떠나서 /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 한 / 혁명을 - /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뿐이다 / 그놈들이 배불리 먹고 있을 때도 / 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 / 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 / 그대들인데 /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 보라 항간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려고 / 버둥거리고 있다 / 보라 금값이 갑자기 8,900환이다 / 달걀값은 여전히 영하 28환인데

이래도 / 그대들은 유구한 공서양속(公序良俗) 정신으로 / 위정자가 다 잘해 줄 줄 알고만 있다 / 순진한 학생들 / 점잖은 학자님들 / 체면을 세우는 문인들 / 너무나 투쟁적인 신문들의 보좌를 받고

아아 새까맣게 손때 묻은 육법전서가 / 표준이 되는 한 / 나의 손등에 장을 지져라 / 4‧26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 차라리 /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워라 / 하기야 / 혁명이란 단자는 학생들의 선언문이고 / 신문하고 / 열에 뜬 시인들이 속이 허해서 / 쓰는 말밖에는 아니 되지만 / 그보다도 창자가 더 메마른 저들은 / 더 이상 속이지 말아라 /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으니까”

혁명이란 무엇인가., 낡은 세계의 기준과 표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의 기준과 표준을 세우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낡은 가치와 질서가 지배하는 삶의 영토를 새로운 가치와 질서가 지배하는 삶의 영토로 바꾸는 것이다. 「육법전서와 혁명」에서 번뜩이는 김수영의 문제의식과 통찰력은 낡은 세계(삶)의 기준과 표준에 얽매여서는 새로운 세계(삶)의 가치와 질서는 결코 발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혁명은 ‘합법’이 아닌 ‘불법’이다. 합법은 낡은 삶의 기준과 표준, 가치와 질서이고 낡은 세계의 영토를 의미한다. 그런데 혁명을 한답시고 낡은 세계의 영토 안에서 낡은 삶의 기준과 표준, 가치와 질서에 의존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낡은 세계(삶)의 기준과 표준, 가치와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삶)의 영토로 바꾼다는 것, 그 자체가 불법이 아니고 무엇인가. ‘합법’으로 ‘불법’을 만들겠다는 것은 그래서 ‘개소리’요 ‘개수작’에 불과하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김수영의 추상같은 일갈은 흥미롭게도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 은밀하게 새겨놓은 문제의식과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의 질서와 새로운 삶의 영토는 어떻게 구성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탐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육법전서와 혁명」은 『군주론』의 요약본이고 김수영과 마키아벨리는 탁월한 ‘혁명의 철학자’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물어보자.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은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 은밀하게 새겨놓은 혁명의 비밀, 즉 이 책이 “완전히 새로운 시작에 관한 이론”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최초의 철학자는 프랑스 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였다.

“마키아벨리가 완전히 새로운 것에 관한 이론가인 것은 그가 시작들에 관한, 하나의 시작에 관한 이론가이기 때문이다.” (루이 알튀세르, 오덕근‧김정한 옮김, 『마키아벨리의 가면』, 이후, 2001. p26.)

새로운 것의 시작은 낡은 것의 단절과 대조를 이룬다. 바로 여기에서 “새로운 세계의 질서와 새로운 삶의 영토는 어떻게 구성되는가?라는 마키아벨리의 질문은 시작한다. 완전히 새로운 시작은 낡은 세계(삶)의 역사적 경험과의 단절, 역사적 기억의 망각에서 출발한다. 단절과 망각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것은 낡은 것의 지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낡은 것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준과 표준, 가치와 질서를 세우는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낡은 세계(삶)의 역사적 경험과 기억에 얽매이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삶)를 상상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시작은 항상 새로운 세계(삶)를 상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세계(삶)을 상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신을 얽어매고 길들여온 낡은 세계(삶)의 기준과 표준, 가치와 질서의 지배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새로운 삶의 질서, 새로운 삶의 영토’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전제돼야 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불온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은 ‘합법’의 경계를 넘어 ‘불법’을 감행하는 것인데 불온하지 않다면 어떻게 ‘불법’을 상상할 수나 있겠는가.

그래서 일찍이 김수영은 실험적인 것, 전위적인 것, 혁명적인 것에 대한 ‘상상은 본질적으로 위험하고 불온한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이 불온해야 하고 삶이 불온해야 한다. 불온해야 낡은 세계(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고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고 불가능한 것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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