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등 3건 문화재 등록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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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등 3건 문화재 등록 예고
  • 이성태 기자
  • 승인 2022.10.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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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문화재청 제공]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1960년대 신생활복, 일제강점기 강제징병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하고 이육사 친필 편지·엽서와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 등록 고시했다고 17일 밝혔다.

등록 예고되는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는 6·25전쟁 직후 대구 피난시절 디자이너 최경자가 폐낙하산을 재활용해 블라우스를 제작해 판매하다가 인기를 얻자 수입 나일론 원사를 편물로 제직해 만든 블라우스다.

당시 사치품으로 분류돼 수입이 금지된 나일론 섬유가 여성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 시대상황과 편물·봉제 기술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1960년대 신생활복은 국민의 의복생활을 개선하고 재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신생활복장’을 제정하고, 이를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전개한 국민재건운동의 단면을 보여주는 유물로 역시 최경자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당시 생활복식사와 한복의 현대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가치가 있다. 당시 정부가 제시한 신생활복의 표준안을 재해석해 저고리와 치마를 분리하지 않은 원피스형과 저고리는 단추로 여미고 탈부착형 고름을 달아 장식 기능을 더하는 등의 디자인을 했다.

함께 등록 예고되는 일제강점기 강제징병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는 아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어머니가 직접 제작한 유물이다.

러·일전쟁 전후 생겨난 일본의 풍습(천인침)이 일제강점기말 징집되는 조선청년인 아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조끼를 제작하는 데 사용된 점은 국권침탈이 우리 문화의 깊숙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강제징병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물이다.

유물 착용자의 징집 시기, 자대 배치, 전역 날짜, 아내의 창씨명 등의 징집관련 기록은 국가기록원 소장 ‘강제동원자 유수명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번에 등록되는 이육사 친필 편지·엽서는 이육사가 1930년대 당시 근황을 담아 친척과 친구에게 보낸 친필 편지와 엽서다. 친필 편지를 통해서는 중외일보 대구지국 근무시절 당시 그가 겪었던 생활형편을 짐작할 수 있으며 친필 엽서(2점)에서는 시인 신석초와의 우정과 고향을 자주 찾지 못하는 아쉬움, 친척 간 정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의 인간적인 면을 파악할 수 있는 친필자료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함께 등록되는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은 1921년 천도교 중앙대교당(서울 종로구)과 함께 건립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사회계몽 활동이 이루어진 장소다. 1969년 기존 소재지 일대의 도시개발사업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해방 전 천도교가 수행했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존하려는 의지로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서울 강북구 삼양로(우이동)에 위치한 천도교 봉황각 옆으로 이전된 건물이다. 당대 건축기술의 한계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민족종교 활동과 민족운동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등록된 문화재를 해당 지방자치단체·소유자(관리자) 등과 협력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등록 예고된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외 2건에 대해서도 30일간의 예고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해 문화재로 최종 등록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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