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걷어내는 “불교 아닌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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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걷어내는 “불교 아닌 불교”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2.10 09: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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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은 점을 본다. 어떤 이는 인터넷으로 ‘토정비결’을 검색하고 어떤 이는 점집을 찾아 새해 신수를 묻는다.

점집은 흔히 불교와 연결된다. 무속인을 가리켜 ‘보살’이라 부르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간판부터 ‘처녀보살’, ‘아기보살’과 같은 불교 용어를 내걸고 내부 인테리어 역시 각종 보살상으로 치장하고 있다.

보살은 원래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기 이전의 수행자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대승불교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의미가 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이념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대승불교에서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일컫는다.

어쨌든 점을 본다는 것은 일종의 숙명론을 받아들이는 행위다. 여기에서 숙명론은 또 불교의 윤회사상과 연결된다. 윤회는 곧 업(業)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통이 전생의 업이나 팔자 탓이라는 식의 하소연은 윤회사상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윤회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현상일면일 뿐 본질은 아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고통을 전행의 업에 의한 고통을 참고 견디라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다.

연기, 무아, 사성제, 팔정도 등은 고통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탈과 열반의 길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송나라 고승으로 알려진 영명 연수는 『유심결』에서 “믿음만 있고 이해가 없으면 무명이 더욱 자라고, 이해만 있고 믿음이 없으면 삿된 견해가 더욱 자란다”고 말했다.

여기서 믿음이 종교적 신앙이라면 이해는 인문학적 사유라 할 수 있다.

 

신간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란 무엇이 아닌가』(담앤북스)는 이 둘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올바른 불교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말한다. 믿음만 강조되면 불교가 왜곡된 신앙으로 흐를 수 있고, 반대로 이해만 강조되면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책에는 오해하거나 착각할 수 있는 혹은 혼동할 수 있는 20가지 주제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불교 아닌 것과 불교인 것을 대조함으로써 불교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허무와 무상 같이 대비되는 주제가 있는 반면 지식이나 지혜처럼 이웃해 있는 문제들을 펼쳐놓기도 한다. 또 주제를 넓혀 이성과 신앙, 자력 종교와 타력 종교, 닫힌 종교와 열린 종교 등도 비교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불교는 인문학”이라는 명제를 견지한다. 특히 여러 주제를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불교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성찰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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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민 2015-02-10 20:42:39
부처는 신이아닙니다. 그리고 원래 하나님이 신입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에 바알선지자2000명이랑 1명이결투를버렸습니다.(근대2000천명이아닐수도있습니다.)할든가네 엄청 많습니다. 그리고 1명이 하나님선지자,바알선지자는 할든가네 많습니다 그런대... 1명이 이겨습니다. 그래서 판결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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