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욕망에 갇혀 타자의 삶에 무관심한 도시인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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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망에 갇혀 타자의 삶에 무관심한 도시인의 고독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01.0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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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⑩ 알베르 카뮈 『이방인』…일상 속의 유령 ‘무관심·고독’Ⅰ

[한정주=고전연구가]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고독은 근대 이후 거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 속을 떠돌아다니는 유령 같은 존재이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도시인의 삶과 심리를 내밀하게 추적한 작가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핵심 주제 역시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고독이다.

도대체 어떻게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고독이라는 유령이 도시인의 삶을 지배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고독은 자신의 욕망에 갇혀 욕망의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도시인의 삶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에 갇혀 있는 삶을 살면 오직 자신의 욕망에만 관심이 있을 뿐 타자의 삶에는 관심이 없게 된다. 또한 자신의 욕망만 보일 뿐 타자의 삶은 보이지 않게 된다. 욕망에 갇힌 삶은 타자에 대한 무관심을 낳고 타자에 대한 무관심은 다시 고독을 낳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 삶이 다름 아닌 도시인의 일상이다.

욕망에 갇힌 내가 타자에게 무관심한 만큼 욕망에 갇힌 타자 역시 나에게 무관심하다. 무관심의 상호보완성, 이것이 바로 도시인의 고독을 낳는 원인이다. 나의 무관심이 타자의 무관심을 낳고 다시 타자의 무관심이 나의 무관심을 낳으면서 나도 고독의 늪에 빠지게 되고 타자도 고독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 도시인의 삶의 일상 구조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박태원과 『이방인』의 알베르 카뮈는 동시대를 살면서 근대 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도시인의 무관심과 고독을 가장 내밀하게 추적한 소설가였다. 특히 흥미롭게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이방인』은 식민지 근대 도시인 경성과 알제(당시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 수도 알제)를 무대로 하고 있다.

먼저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어떻게 1930년대 중반 식민지 근대 도시 경성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무관심과 고독의 풍경을 포착·묘사하고 있는지 읽어보자.

구보는 도쿄(東京)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지식인이지만 아직 직업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은 스물여섯 살 청년이다. 그는 매일 어머니의 잔소리와 걱정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서 밤늦게나 되어 돌아오곤 한다.

그날도 구보는 집을 나와 천변 길을 광교로 향해 걸어가다가 다리 모퉁이에 이르러 잠시 걸음을 멈췄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던 구보는 모두가 갈 곳이고 또한 한 군데도 갈 곳이 없다는 역설 앞에 한낮 거리 위에서 격렬한 두통을 느낀다. 그렇게 우두커니 다리 곁에 서 있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구보는 갑자기 근대 도시 경성의 도심 한복판으로 걸음을 뗀다.

종로 네거리 화신상회(화신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가 다시 밖으로 나온 구보는 발 가는 대로 전차가 멈추는 안전지대에 가 섰다. 구보는 멍하니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전차에서 내리고 또 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다가 구보는 문득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그곳에 자기 혼자 남아 있다는 것에 외로움과 애달픔을 맛본다.

구보는 무작정 움직이는 전차에 올라탄다. 동대문행 전차 안 차장대(車掌臺) 가까운 한구석에 가 선 구보는 ‘고독’에 잠겨 ‘고독’에 대해 생각한다.

“장충단으로. 청량리로. 혹은 성북동으로…그러나 요사이 구보는 교외를 즐기지 않는다. 그곳에는, 하여튼 자연이 있었고, 한적(閑寂)이 있었다. 그리고 고독조차 그곳에는, 준비되어 있었다. 요사이, 구보는 고독을 두려워한다. 일찍이 그는 고독을 사랑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고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심경의 바른 표현이 못될 게다. 그는 결코 고독을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도리어 그는 그것을 그지없이 무서워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고독과 힘을 겨루어, 결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그런 때 구보는 차라리 고독에게 몸을 떠맡기어 버리고, 그리고, 스스로 자기는 고독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꾸며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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