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문장이 사라진 까닭…모방하거나 본뜬 ‘가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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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문장이 사라진 까닭…모방하거나 본뜬 ‘가짜 글’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2.12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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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⑤
 

[한정주=역사평론가] 고문(古文)의 명목(名目)이 성행한 시기는 수(隋)나라와 당(唐)나라 이후부터일 것이다.

대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준걸(俊傑)은 각자의 뜻과 기운과 정신 그리고 언어와 재능과 공력이 붓끝에서 드러나 수작하고 호응하여 끊이지 않은 것이 문장 아닌 것이 없다. 비록 잘하고 못하고 하는 분별은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고금(古今)의 구분이 있겠는가.

과거(科擧)의 학문이 나온 후부터 오로지 허황되고 공허한 문장만을 숭상하고 과거시험을 위한 공령문(功令文)에 구속받아 벼슬아치의 눈에 들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그것을 비로소 시문(時文)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기타 서(序)와 기(記)와 논(論)과 설(說) 등의 문자에 약간의 전범과 법칙을 더한 것을 고문(古文)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지극히 어려운 문장으로 생각하였다. 이로써 두 가지 길로 갈라지게 되어 참된 문장이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재번역)

古文之名目盛行 其隋唐以來乎 夫名世雋傑 各有志氣精神 言語事功 發露筆端 酬應不已者 無非文也 雖有工拙之辨 安有古今之分 科擧之學旣出後 專尙浮虛 拘於功令 以不入主司之眼爲可懼 而始號爲時文 其它序記論說等文字稍加典則者 號爲古文 視之爲至難底物 於是分爲二道 文章之眞十亡八九矣. 『이목구심서 1』

문장의 전범인 고문에 가까운 글이 좋은가? 저서의 전범인 고전에 가까운 책이 훌륭한가?

그것은 죽은 글이자 거짓 책일 뿐이다. 그 문장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모방하거나 본뜬 것이라면 ‘가짜 글’에 불과하다. 그 언사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것이라면 ‘죽은 글’에 불과하다. 옛사람의 글을 진부하게 답습하지 않아야 ‘살아있는 글’이다.

글을 쓰는 사람의 참신하고 창의적인 정신이 담겨 있어야 ‘참된 글’이다. 글이란 자구 하나하나마다 작자의 지기(志氣)와 정신(精神)이 살아 꿈틀거려야 한다.

이른바 고문(古文)과 고전(古典) 가운데 작자의 지기와 정신이 살아있지 않는 글이 있는가? 만약 그 뜻과 기운과 정신이 살아 있다면, 그 글이 고문인지 금문(今文)인지는 따질 필요조차 없다.

고문보다 훌륭한 금문과 고전보다 탁월한 금서(今書)가 어떻게 없을 수 있겠는가? 고문도 그 당시에는 금문이었고, 금문 또한 시간이 지나면 고문이 된다.

오직 자신의 지기와 정신이 살아 있는 글을 쓰는데 힘을 쏟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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