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현당(希賢堂)·보한재(保閑齋) 신숙주…“명리를 멀리하고 한가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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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현당(希賢堂)·보한재(保閑齋) 신숙주…“명리를 멀리하고 한가롭게 살고 싶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2.1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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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⑰
▲ 보한재 신숙주의 초상.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범옹(泛翁). 성삼문과 함께 집현전을 빛낸 학사로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적극 가담해 세종의 기대를 저버렸고 집현전의 친구들을 배신했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가장 큰 공적을 남긴 인물 중의 하나다. 특히 그는 요동으로 유배당한 명(明)나라의 학자 황찬(黃瓚)을 무려 열 세 차례나 찾아가 만나 언어와 문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얻었고, 이를 훈민정음 창제에 적극 활용했다.

그가 처음 사용한 호인 ‘희현당(希賢堂)’ 역시 황찬과 깊은 인연이 있다. 그의 문집에 전해오는 ‘연보(年譜)’에 따르면 그는 나이 29세 때인 1445년 4월8일 황찬에게 당액(堂額)을 지어 달라고 청했고, 황찬은 ‘현인(賢人)을 희구(希求)하라’는 뜻을 담아 신숙주에게 ‘희현당(希賢堂)’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시 보한재(保閑齋)라는 호를 썼는데, 여기에는 ‘한가함을 보존한다’는 뜻 그대로 명리(名利)를 멀리하고 한가롭게 살고 싶다는 신숙주의 소망이 담겨 있다.

그런데 현재 전해오는 신숙주의 문집 이름은 『보한재집(保閑齋集)』으로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희현당보다는 보한재라는 호를 더 선호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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