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와 여의주…“우주 만물은 모두 균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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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구리와 여의주…“우주 만물은 모두 균등하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2.20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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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⑩
 

[한정주=역사평론가]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재번역)

螗琅 自愛滚丸 不羡驪龍之如意珠 驪龍 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 『선귤당농소』

말똥구리에게 용의 여의주는 필요 없는 물건일 따름이다. 용 역시 자신의 여의주가 귀한 만큼 말똥구리에게는 말똥이 귀하다는 것을 안다.

우주 만물 중 가장 존귀한 동물인 용의 ‘여의주’와 가장 미천한 동물인 말똥구리의 ‘말똥’의 가치는 동등하다. 이제 우열(愚劣)과 존귀(尊貴)와 시비(是非)의 이분법은 전복되고 해체된다.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늘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주 만물은 모두 균등하다. 단지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할 뿐이다.

이덕무를 비롯한 북학파의 지식인들은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균등할뿐만 아니라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표현한 이 구절을 무척 좋아하고 아꼈다.

먼저 박지원은 ‘낭환집서(蜋丸集序)’라는 글에서 다시 이 구절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또한 여기에는 유득공의 숙부였던 유금이 이 말을 듣고 자신의 문집의 이름으로 삼을 만하다고 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즉 유금은 자신의 문집을 ‘말똥구리의 말똥구슬’이라는 뜻에서 『낭환집(蜋丸集)』‘이라고 했다. 박지원이 이 문집에 써준 글이 바로 ‘낭환집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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