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습고 또 우습구나!…시대를 잘못 만난 처절한 선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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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고 또 우습구나!…시대를 잘못 만난 처절한 선비의 삶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2.25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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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⑮
 

[한정주=역사평론가] 우산이 떨어져 우뢰를 맞으며 깁고, 섬돌을 붙들어 낡은 약절구를 안정시키고, 새들을 문하생으로 삼고, 구름을 벗 삼아 산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형암(炯菴)의 생활을 두고 ‘편안한 삶’이라고 한다. 우습고, 우습고 또한 우습구나! (재번역)

敗雨傘 承霤而補 古藥臼 逮堦而安 以鳥雀爲門生 以雲烟爲舊契 炯菴一生 占便宜人 呵呵呵. 『선귤당농소』

이덕무는 자의식(自意識)이 충만한 지식인이었다. 탁월한 문장과 뛰어난 학식, 드높은 기상과 비분강개한 뜻을 갖추고 있었지만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와 차별 탓에 자신의 재주와 역량을 마음껏 펼쳐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벌레와 기와와 자신을 동일시한 이덕무의 시 ‘벌레가 나인가 기와가 나인가(蟲也瓦也吾)’를 읽을 때마다 필자는 피를 토하는 듯 울부짖는 그의 절규가 들려 가슴이 아리다.

“벌레가 나인가 기와가 나인가 / 아무런 재주도 없고 기술도 없구나. / 뱃속에는 불기운 활활 타올라 / 세상 사람과 크게 다르구나. / 사람들이 백이(伯夷)는 탐욕스러웠다고 말하면 / 내 분노하여 빠득빠득 이(齒)를 가네. / 사람들이 영균(靈均 : 굴원)은 간사했다고 말하면 / 내 화가 나 눈초리가 찢어지네. / 가령 내게 입이 백 개가 있다고 해도 / 어찌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 단 한 명도 없는가? / 하늘을 우러러 말을 하니 하늘이 흘겨보고 / 몸을 구부려 땅을 바라보니 땅도 눈곱 꼈네. / 산에 오르려고 하자 산도 어리석고 / 물에 다가가려 하자 물도 어리석네. / 어이! 아아! 아아! / 허허 허허 한탄하며 / 광대뼈와 뺨과 이마는 주름지고 눈썹은 찌푸리고 / 간과 폐와 지라는 애태우고 졸여졌네. / 백이가 탐욕스러웠다 하든 영균(굴원)이 간사했다고 하든 / 그대에게 무슨 상관인가! / 술이나 마시고 취하면 그뿐이고 / 책이나 보며 잠을 이룰 뿐이네. / 한탄하누나! 잠들면 차라리 깨지 않고 / 저 벌레와 기와로 돌아가려네.”

누가 이덕무를 두고 청량(淸凉)한 선비라고 했는가. 차라리 비분강개한 선비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선비의 삶이란 이렇게 처절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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