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모든 요건을 갖춘 삶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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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모든 요건을 갖춘 삶의 드라마”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05.0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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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⑬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삶의 본성:불예측성과 불확실성Ⅰ
오이디푸스와 장님인 아버지를 이끌고 있는 딸 안티고네. 1843년 힐레마허의 작품.
오이디푸스와 장님인 아버지를 이끌고 있는 딸 안티고네. 1843년 힐레마허의 작품.

[한정주=고전연구가] 만약 자신의 삶이 희극이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비극이기를 바라는지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희극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은 희극이기를 바라면서도 희극보다는 비극에 더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이유는 비극 속에 담겨 있는 삶의 불예측성과 불확실성에서 찾을 수 있다.

도박이나 게임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대개 사람은 예측할 수 있는 것보다는 예측하기 어려운 것 혹은 확실한 것보다는 불확실한 것에 훨씬 더 깊게 매료된다. 아무리 행복하고 평온한 삶이라고 해도 죽을 때까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예측성과 불확실성 때문에 항상 삶의 표면 아래에는 ‘비극에 대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삶의 희극, 즉 행운과 행복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연 삶의 비극, 곧 불운과 불행으로 바뀌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행복해도 삶에는 비극에 대한 불안이 존재하고 불행해도 삶에는 비극에 대한 불안이 존재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행복할 때 느끼는 불안이 불행할 때 느끼는 불안보다 훨씬 더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불행할 때 느끼는 불안은 그래도 이 불행이 언제나 끝날까 하는 ‘기대감이 섞여 있는 불안’이라면 행복할 때 느끼는 불안은 이 행복이 깨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섞여 있는 불안’이기 때문이다.

삶의 불예측성과 불확실성에서 오는 비극에 대한 불안, 인간존재의 비극성은 언제나 여기에서 나온다.

삶에 대한 예측은 빗나가기 쉽다. 우리의 삶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때문에 삶은 아무리 희극이라고 해도 비극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한 대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운과 행복의 최고 정점에서 은밀하게 찾아든 뜻밖의 재앙으로 처절하게 몰락하고마는 오이디푸스 왕의 운명은 “비극의 모든 요건을 갖춘 삶의 드라마”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적 운명을 최고의 걸작으로 극화한 사람은 소포클레스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비극 문학을 대표하는 3대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적 운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바로 그 순간 테바이 원로들의 탄식을 빌어 인간이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비극성, 즉 불예측성과 불확실성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내 조국 테바이 주민들이여, 보시오. 저 분이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고는 더없이 권세가 컸던 오이디푸스요. 어느 시민이 그의 행운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았던가! 보시오. 그런 그가 얼마나 무서운 불운의 풍파에 휩쓸렸는지! 그러니 항상 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기를 지켜보며 기다리되,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마시오. 그가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되어 삶의 종말에 이르기 전에는.”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그리스 비극 걸작선』, 숲, 2010, p234)

오이디푸스 왕과 그 가족들의 비극적 운명을 다루고 있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3부작. 즉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제 소포클레스의 비극 3부작과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그리스 신화 속 내용을 중심으로 오이디푸스 왕의 불행과 행운, 영광과 행복, 파멸과 몰락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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