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불안은 모든 사람의 삶에 공평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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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불안은 모든 사람의 삶에 공평하게 나타난다”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05.26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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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⑬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삶의 본성:불예측성과 불확실성Ⅳ
지오반니 실방니 작품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
지오반니 실방니 작품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

[한정주=고전연구가] 그럼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여기에서 멈췄을까. 아니다. 재앙과 불행은 종종 행운과 행복이 감추고 있는 삶의 또 다른 진실, 즉 인간관계의 숨겨진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곤 한다.

앞서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는 2남 2녀의 자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2남은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이고 2녀는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이다.

어머니 이오카스테가 자살하고 아버지 오이디푸스가 장님이 된 채 테바이에서 추방당한 비극의 와중에도 두 아들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빈 왕좌를 차지할 욕심에 오직 권력 투쟁에만 몰두했다. 동생 에테오클레스가 형 폴뤼네이케스를 쫓아내고 왕좌를 차지하자 격분한 폴뤼네이케스는 적대국 아르고스의 군대를 이끌고 와서 테바이를 공격했다.

격렬한 전투 끝에 결국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끔찍한 비극을 저지르고 만다. 예전 아폴론이 오이디푸스에게 내린 세 가지 저주스러운 예언 가운데 남은 마지막 예언, 즉 ‘세상 사람들에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자식들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신(운명)의 저주를 받고 자식에게까지 외면당한 오이디푸스를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아주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최후의 순간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곁에 끝까지 남은 유일한 사람, 즉 딸 안티고네의 도움을 받아 아테나이 부근 콜로노스로 찾아든다.

이곳에서 오이디푸스는 아테나이의 지도자 테세우스의 도움과 배려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죽음을 맞는다.

삶의 관점에서 오이디푸스 왕의 파멸과 몰락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그것은 아무리 권세가 크고 지위가 높고 부유하며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삶의 표면 아래에는 항상 ‘비극에 대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우리의 삶은 불예측성과 불확실성 때문에 ‘비극에 대한 불안’의 경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파테이 마토스(pathei mathos)’, 즉 고통을 겪어야만 비로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은 역시 ‘비극에 대한 불안’의 울타리를 넘어서기 어렵다.

‘삶의 불예측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삶의 고통과 깨달음’, 인간 존재의 이 두 가지 비극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가 죽을 때까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십자가이다.

삶의 불예측성과 불확실성을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또한 삶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삶은 더욱 더 비극에 대한 불안의 나락으로 우리를 밀어 넣고 말 것이다. ‘삶의 희극’은 사람에 따라 불공평하게 나타나지만 ‘삶의 비극’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답을 찾으려고 해도 도대체 답을 찾을 수 없는 삶의 비극성 앞에서 이렇게 자문해본다. ‘차라리 불예측성, 불확실성 그리고 고통을 결코 회피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삶의 불가피한 조건으로 긍정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우리의 삶 속에서 불예측성, 불확실성,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라고.

그래서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가 자신의 아들이자 남편에게 경고한 아래의 말은 불예측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고통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인간은 우연의 지배를 받으며 아무것도 확실히 내다볼 수 없거늘, 그런 인간이 두려워한다고 무슨 소용 있겠어요? 되는대로 그날그날 살아가는 것이 상책이지요.”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그리스 비극 걸작선』, 숲, 2010, p211)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삶의 길을 중단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우리는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우리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멈출 수 없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희극이든 비극이든, 희망이든 절망이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저 묵묵히 자기 삶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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