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영(濯纓) 김일손…“더럽고 썩은 권력에 빌붙어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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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濯纓) 김일손…“더럽고 썩은 권력에 빌붙어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0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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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㉖
▲ 김일손의 친필.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계운(季雲). 무오사화 때 죽임을 당한 사림의 절의지사(節義志士)다.

그가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세조의 왕위 찬탈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은 것이 발단이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그는 오늘날 권력에 꺾이지 않은 직필(直筆)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탁영(濯纓)’이라는 호에 담긴 뜻 역시 이러한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이 호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충의지사이자 시인인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 나오는 창랑가(滄浪歌)의 “창랑의 물이 맑다면 나의 갓끈을 씻겠지만(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나의 발을 씻을 따름이네(滄浪之水濯兮 可以濯吾足)”에서 취한 것이다.

이 창랑가(滄浪歌)에는 세상이 맑아 도리가 행해진다면 갓끈을 씻고 몸가짐을 가지런히 한 다음 벼슬을 하겠지만 세상이 탁해 도리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발이나 씻고 초야(草野)에 묻혀 은둔의 삶을 살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벼슬에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밝힌 이른바 선비의 ‘출처(出處) 철학’이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탁영(濯纓)’이라는 호에는 더럽고 썩은 권력에 빌붙어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김일손의 고고하고 당당한 기상이 서려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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