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당(聽松堂) 성수침…‘솔바람 소리를 듣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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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당(聽松堂) 성수침…‘솔바람 소리를 듣는 집’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0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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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㉛
▲ 겸재 정선이 그린 ‘청송당’.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중옥(仲玉). 조광조의 수제자로 1519년(중종 14년)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랐지만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청송당(聽松堂)이라 이름붙인 집에 은둔한 채 세상을 멀리하고 경서(經書) 연구에만 전념했다.

그는 사림의 적통을 이은 조광조의 수제자이기도 했지만 또한 서인의 종조(宗祖)가 되는 우계(牛溪) 성혼의 아버지였다. 때문에 훗날 사림파는 물론이고, 특히 서인 당파로부터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다.

이 때문인지 송시열은 ‘청송당기(聽松堂記)’에서 당시 성수침의 삶을 가리켜 “예부터 은둔하는 선비는 산골 계곡 사이에 깊숙이 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성선생(成先生: 성수침)의 청송당(聽松堂)만은 이상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청송당은 왕성(王城) 안 백악산(白岳山 : 북악산) 아래에 있다. 번화한 소리와 이익이 날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어오건만 선생의 마음은 마치 떠다니는 구름처럼 있는 듯 없는 듯했고, 그 맑고 깨끗한 모습은 마치 진흙 속에서 나왔지만 때가 묻지 않은 연꽃과 같았다”라고 묘사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성수침의 집터는 현재 경기상고가 들어서 있는 북악산(백악산) 아래요 인왕산 기슭인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방을 두르고 있는 소나무 숲 가운데 거처하면서 ‘솔바람 소리를 듣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청송당’을 자호(自號)로 삼았던 그는 사시사철 푸르른 기운을 자랑하는 소나무를 벗하며 맑고 절조 있는 선비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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