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養鷄)와 수박…어떤 것도 기록으로 남기는 걸 마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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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養鷄)와 수박…어떤 것도 기록으로 남기는 걸 마다하지 않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12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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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㉙
 

[한정주=역사평론가] 나는 일찍이 침중계(枕中鷄)를 기르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9월과 10월 서리가 내릴 때 알을 품어 부화한 닭은 비록 자라더라도 몸집이 지극히 작다.

다음해에 서리가 내릴 때 또한 그 알을 품게 하면 그 몸집이 더욱 작아진다. 또한 다음해에 손자 닭에 이르게 되면 크기가 마치 주먹만 하다. 수컷은 울 수 있다.

판자를 덧붙여 베개를 만들고 그 속에서 기른다. 밤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축시(丑時 : 새벽 1시〜3시)에 반드시 운다. 무릇 서리가 내릴 때 부화한 닭을 ‘상계(霜鷄)’라고 부른다. (재번역)

余嘗聞枕中雞法 九月十月霜降時所伏雞 雖長形體至小 明年霜降時 又使之伏其卵 形復減小 至又明年孫雞 則大如拳 䧺者能鳴 附板作枕 養於其中 每夜睡卧 則丑時必鳴矣 凡霜時雞 號曰霜雞.

내가 일찍이 흙구덩이에서 닭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겨울에 땅을 약간 정도의 깊이로 파고 나무를 걸쳐서 방을 만들고 단지 밝은 빛이 통하는 구멍 하나만 남겨놓는다. 그 안에 솜털처럼 부드러운 풀을 쌓아두고 닭 무리를 안으로 몰아넣어 나오지 못하도록 한다.

항상 마시고 쪼아 먹는 모이 외에 먹이에 토류황(土硫黃)을 배합하여 콩 만한 크기로 만든 다음 그것을 먹인다. 그렇게 하면 다음해 봄에 살이 쪄서 배나 커지고 맛은 더욱 연하고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그 이치가 혹 그럴 듯하다.

파와 순무 같은 채소를 분(盆) 속에 심어서 겨울에 따뜻한 방안에 놓아둔다. 때때로 물을 주고 햇빛을 보지 못하도록 하면 그 줄기와 잎이 누르스름하게 되어 싹이 트고 길게 자라서 윤택하게 살이 찐다. (재번역)

余嘗聞土坎養雞法 冬掘土深若干尺 架木爲室 只有通明一竅 積毳草於其中 駈群雞入之使不出 常料飮啄之具外 飯和土硫黃如菽大飼之 明春肥大倍勝 味尤嫰軟 此理或然也 如葱菁之屬 埋於盆中 冬置暖房 時時澆水 使不見陽氣 其莖葉黃白茁長潤肥也.

나는 일찍이 큰 수박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구덩이를 두어 자 가량 파고 나무를 종횡(縱橫)으로 구덩이 입구에 걸쳐 놓는다. 또한 못 쓰는 풀 자리를 펼쳐놓고 부드럽고 비옥한 흙을 체로 잘게 가루를 내어 그 위에 한 자 정도 쌓아둔다.

좋은 수박 종자를 심고 구덩이 옆에 작은 구멍 하나를 내고 항상 거름 물을 대어준다. 그 열매를 맺는데 이르면 맑은 물, 거름 물, 꿀물 등을 번갈아서 대어주면 크기는 마치 통(桶) 같고 맛은 아주 달게 된다고 한다.

또한 수박을 크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수박 종자 세 개를 한 곳에 심고 그 덩굴이 조금 자라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뿌리에서 두어 치 가량 되는 곳을 자르고 그 속에 수박덩굴을 넣어서 칼로 좌우(左右)의 껍질을 벗겨낸다.

양 옆의 수박덩굴은 다만 안으로 향한 껍질만 벗겨내고 세 가지의 벗겨낸 곳을 서로 묶어서 칡으로 싸고 진흙으로 봉한다. 오랫동안 그렇게 두면 연결되어 한 줄기를 이루게 된다.

단지 가운데 덩굴만 남겨두고 양 옆의 덩굴을 잘라내면 세 뿌리가 하나의 덩굴이 되어 열매를 맺으면 가히 바다에 띄울 만하다.

붉고 하얀 두 가지 색깔의 금봉화(金鳳花 : 봉선화) 역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매양 꽃송이의 반은 붉고 반은 하얀 꽃이 피어난다. (재번역)

余嘗聞大西瓜法 掘坎數尺 以木縱橫坎口 又鋪敗茵 篩細軟肥土 積其上一尺許 種好西瓜子 坎旁通一小穴 每澆糞水 及其結宲 淸水糞水蜜水遞灌 則大如桶味甚甘矣 又有大匏法 種三匏於一處 俟其蔓稍長 去根數寸 居中匏蔓 刀刮左右皮子 兩旁匏蔓 只刮向內皮子 三條刮處相合 以葛皮裏之 黃泥封之 久而聯成一膚 只留中蔓 而兩蔓割棄 則三根共成一蔓 結宲可以浮海 赤白二色金鳳花 亦用此法 每一花半赤半白矣. 『이목구심서 1』

옛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한 가지에 불과한 음식을 주제로 하는 서책 역시 많이 남겼다.

술을 주제로 왕적과 두평은 『주보(酒譜)』를, 정오는 『속주보(續酒譜)』를 남겼다. 차를 주제로 육우는 『다경(茶經)』을 지었고, 모문석은 『다보(茶譜)』를, 채양과 정위는 다시 『다록(茶錄)』를 썼다.

방안 가득 산뜻한 냄새를 채우는 향(香)을 한 가지 주제로 범엽은 『향서(香序)』를, 홍추는 『향보(香譜)』를, 섭정록은 『향록(香錄)』을 저술했다.

꽃과 과일과 나무 중 한 가지를 소재로 선택해 심립은 『해당보(海棠譜)』를, 한언직은 『귤록(橘綠)』을, 범성대는 『매국보(梅菊譜)』를, 구양수는 『목단보(牧丹譜)』를, 유공보는 『작약보(芍藥譜)』를, 대개지는 『죽보(竹譜)』를, 찬녕은 『순보(筍譜)』를 지었다.

담배를 한 가지 주제로 삼아 『연경(煙經)』을 저술했던 이옥이 책의 ‘서문(序文)’에 남긴 말이다.

이옥은 이와 같은 저서 등을 통해 옛 사람들은 기록할 만한 이유가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물건일지라도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그렇게 한 까닭은 무엇인가? 일상생활에 유용하지만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물건이라고 업신여기는 탓에 이곳저곳에 버려진 것들을 세상에 환하게 드러내어 현재는 물론 미래 세대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성리학의 세계와 사유에 갇혀 있지 않았던 18세기의 지식인들은 이렇듯 자신이 좋아하고 세상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어떤 것도 기록으로 남기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책이 앵무새를 주제로 삼은 기록인 이서구의 『녹앵무경(綠鸚鵡經)』이고, 비둘기를 주제로 삼아 저술한 유득공의 『발합경(鵓鴿經)』이고, 바다 생물을 소재로 삼아 쓴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등이다.

여기 이덕무의 ‘양계’와 ‘수박’에 관한 기록 역시 마찬가지 이치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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