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㊸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여수(汝受). 목은 이색의 7대손이자 토정 이지함의 친조카이다.
이지함을 스승 삼아 학문을 배워 화담 서경덕의 학통을 계승했기 때문에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할 때 동인이 되었다. 그리고 동인이 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분열한 이후 북인의 영수가 되었다.
나이 52세 때인 1590년(선조 23년) 처음 영의정에 올랐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탄핵을 받아 귀양까지 갔으나 전쟁 중인 1595년(선조 28년) 복직된 후 나이 62세 때인 1600년(선조 33년)에 다시 영의정이 되었다.
글씨를 잘 썼고 산수묵도(山水墨圖) 역시 잘 그렸다. 특히 선조 연간 문장8가(文章八家) 중의 한 사람으로 불릴 만큼 문장이 뛰어났다. 저서로는 『아계유고(鵝溪遺稿)』가 있다.
그의 호 ‘아계(鵝溪)’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선에 사신으로 온 적이 있는 명나라 재상 허국(許國)이 준 다음과 같은 시(詩)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중국의 회계산에는 아지(鵝池)가 있는데 / 조선의 한산에는 아계(鵝溪)가 있네 / 시냇가에는 거위 무리가 보이고 / 붓 아래에는 무지개가 펼쳐져 있네 / 어찌하여 꼭 새장 속에 넣겠는가 / 드넓은 모래밭에서 제 멋대로 살게 하네.”
이산해의 본향은 충남 한산(韓山)이다. 위의 시로 보면 이산해는 자신의 본향 한산에 있는 ‘거위(오리) 개울’이라고 불린 ‘아계(鵝溪)’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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