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화보다 아름다운 정명 스님 ‘종이꽃 향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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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보다 아름다운 정명 스님 ‘종이꽃 향기’의 비밀
  • 박철성 칼럼니스트·다우경제연구소 소장
  • 승인 2015.03.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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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스님의 ‘향기 나는 종이꽃’ 작품. <사진=포토그래퍼 김종선>

오직 지화(紙花) 피우기에 반평생을 받쳤다. 이 분야 당대 최고의 명인 정명 스님(60세·불교지화장엄전승회 회장)의 손길을 거친 지화는 향기가 있다. 향기 나는 종이꽃이다.

스님이 만든 종이꽃의 살아 숨 쉬는 자연 향의 비결은 뭘까? 분명한 것은 여승의 섬세한 손끝 정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지천연염색은 그녀만의 특허 기법이다. 정명 스님의 지화는 모두 천연 재료만으로 꽃물을 들였다. 꽃에 자연의 향이 배어있다. 작품을 접한 갤러리들은 입을 모은다. “생화보다 더 은은하고 아름답다.”

정명 스님은 요즘 거의 매일 밤샘작업을 한단다.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를 앞두고 열리는 ‘지화 전시회’(4월13일~18일) 막바지 준비 때문이다. 눈코 뜰 새 없다는 걸 조르고 보챘다.

지난 24일 정명스님이 있는 ‘연화세계’(경기도 가평군 상면 행현리)로 방향을 잡았다. 이런, 달리다 자칫 지나칠 뻔 했다. 대개 사찰부근엔 이정표나 현판이 보이기 마련. 도로변 입구 높이 약 10m의 약사대불이 있어 겨우 짐작할 수 있었다.

약사대불은 중생을 바른길로 인도해 깨달음을 얻게 하는 부처다. 이곳 약사대불은 한쪽만 검은빛이다. 빛바랜 세월의 흔적이거나 아니라면 세상의 시름을 왼 어깨에만 짊어진 탓일 수도 있겠다.

사찰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아담하고 소박했다. 20평 남짓한 법당과 연꽃 밭 그리고 약 25평 규모의 작업실이 전부다.

작업실을 두드렸다. 열기가 매우 뜨거웠다. 스님과 봉사하는 신도들이 지화제작에 집중하고 있었다. 작업실은 꽃망울이 터졌거나 이를 기다리는 꽃들로 한방 가득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풀칠한 작품이 빨리 마르도록 실내온도를 높여 놨던 것.

▲ 손수 연꽃차를 내놓는 정명 스님의 미소는 연꽃을 닮았다. <사진=포토그래퍼 김종선>

정명 스님은 “방문한다는 얘길 듣고 어제부터 치우고 또 치웠는데도 지저분하다”면서 취재진의 발이 닿을 곳을 맨손으로 훔쳐가며 “협소하니 반배로 인사를 나누자”고 미소 지었다.

스님이 손수 연꽃차를 내놓았다. 입안 가득히 순결한 꽃향기의 은은함이 느껴졌다. 여름에 꽃을 수확해 급랭하면 늘 연꽃차를 맛볼 수 있단다. 이참에 다들 조금 쉬자며 작업을 거들던 신도들에게도 차를 권했다.

정명 스님이 어떤 계기로 지화와 반생을 살아왔는지 궁금했다. 생화도 많은데 왜 하필 종이꽃 만들기일까?

“어린 시절부터 워낙 꽃을 좋아했다”면서 “키우기도 하고 꽃꽂이도 해봤는데 아름다운 순간이 너무 짧아 지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맞다. 지화는 시들질 않는다.

이어 “꽃 중의 꽃은 연꽃”이라며 차 한 모금 들고 잠시 시선을 멀리 가져갔다. 오래전으로 여행을 떠나는듯했다.

◇ 최초로 밝히는 출가 스토리
그녀는 1955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주민등록상에는 1954년. 잘못 기재돼 있단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가난해서 중학교 진학을 못했다. 13세부터 불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동네 절을 드나들며 불교와 인연이 됐다”고 수행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 절이 바로 경북 문경 주흘산(해발 1106m) 중턱에 위치한 성불암(현재 성불사·문경읍 상리).

“성불암에서 천일기도중인 혜륭 스님을 도우며 3년을 지냈다. 새벽 2시30분 일어나서부터 종일 스님 따라 기도하며 독송을 했다. 시간이 지나 언젠가 부터는 경전 없이도 불경이 절로 읊어졌다. 차제에 머리를 깎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싫다고 했다. 밭일은 물론이고 절 짓는 일까지 종일 온갖 할일이 차고 넘쳤다. 너무도 힘든 나날이었다. 어느 날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공부건 기술이건 익혀야겠다고 판단해 그길로 언니한테 갔다.”

▲ 정명 스님이 주지로 있는 ‘연화세계’는 법당도 아담한 절이다. <사진=포토그래퍼 김종선>

어린 시절 가출(?) 일화를 소개하려니 쑥스러웠나보다. 정명스님이 슬며시 웃었다.

초행길, 묻고 물었다. 당시 서울에 살던 언니 집에 어렵게 찾아갔단다. 언니를 만났고 이렇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고. 그날 밤 눈을 부치려는데 한숨도 못 잤단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였을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명 스님은 “자리에 누우면서부터 목탁과 불경소리, 새소리가 귓전에서 떠나질 않더라.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에 언니에게 가까운 절이 어디냐고 물었다. 일러준 우이동 금강사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정태경 스님을 만났고 저간의 사정얘기를 했다. 며칠 머물기를 청하니 몇 달도 좋으니 얼마든지 있으라고 했다”고 흘러간 세월을 더듬었다.

그곳 잠자리, 낯설기는 마찬가진데 잠도 잘 오고 마음이 너무나 편하더란다. 결국 그날부터 다시 절 생활이 시작됐다고.

“스님을 따라 기도를 하는데 자연스레 불경이 읊어졌다. 내가 오기 한 달 전에 스님이 되겠다고 들어온 행자도 불경을 외웠다. 하지만 나와는 비교가 됐었나보다. 기특해 보였던지 스님이 내게 물었다. 독송을 어디서 그렇게 배웠느냐고. 지난 3년의 세월을 털어놨다.”

16세 어린 소녀의 칭찬받은 독송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다. 지난 3년 성불암에서 혜륭 스님을 따라 성실히 닦은 ‘4분정근(四分定根)’ 덕분이었다. ‘4분정근’이란 사시·새벽·점심·저녁예불까지 하루 4번에 걸친 정진 기도다.

“당장에 머리를 깎자고 했다. 그러면 학교도 보내주고 공부 잘하면 대학교수도 시켜주겠다고 했다. 배움에 굶주렸던 나로서는 생각하고 말 상황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삭발을 했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그런데 거울을 보고 실망했다. 너무나 못난 얼굴을 보고 웃음마저 나왔다. 이 얼굴로 어찌 한평생 살아나가 싶었다”면서 “머리 깎기를 정말 잘했다”고 지금은 그저 감사의 마음뿐이란다.

‘향기 나는 종이꽃’의 주인공 정명 스님이 최초로 공개한 출가스토리는 모두를 기쁘게 했다.

◇ 만학도 정명스님의 건강보양식
밤샘작업에 막중한 업무처리, 여기에 정해진 강의까지 해야 한다. 또 정명 스님은 현재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과정 논문학기에 재학 중이다. 만학도 스님의 건강이 걱정됐다.

스님이 같이 식사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식탁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상차림만 보고도 군침이 돌았다. 곤드레나물밥과 갓 채취한 봄 쑥 된장국, 머위·곰취나물과 장아찌, 데치고 볶아서 무친 콩나물, 해를 넘겼음에도 사각사각한 김장김치 등등. 식단은 곁에서 정명스님을 돕는 조카 이순희씨(51세·법명 연화심) 솜씨다. 깊은 정성이 담겼다. 스님은 건강보양식은 정성이 담긴 제철음식이었다.

▲ 정명 스님이 손수 식물성 염료를 채집하고 있다. <정명 스님의 저서 ‘전통지화’ 서적 캡처>

◇ 특허받은 한지 천연염색은 가슴에 감동
염색의 종류와 방법은 다양하다. 염색의 종류는 직접(直接)·매염(媒染)·환원(還元)·발색(發色)·분산염법(分散染法) 등이 있다. 이는 화학약품을 이용하는 방법들. 즉 화학염색이다.

정명 스님은 “천연염색은 꽃잎, 식물의 줄기, 과일껍질, 채소 등 자연재료를 이용해 고유의 빛깔을 연출한다”면서 “화학염색은 눈에서 기쁨을 느끼고 천연염색은 가슴에 감동을 준다”고 설명했다. 상업적 화려함과 전통적 은은함의 차이라는 얘기였다.

천연 염색재료(염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명 스님의 경우 식물성과 광물성만을 사용한다. 식물성 염재는 열매·껍질 꽃·잎·뿌리·줄기·심재 등 부위에 따라 추출한단다.

또 광물성 염재는 색소가 함유된 돌·흙·금속류가 해당된다. 대표적 광물성 염재로 황토가 있고 재·주사·적토·황토·창금석·숯·먹 등이 있다. 정명 스님은 “연꽃을 만들 때는 진달래나무를 태운 재를 염료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단색성 염료로는 치자·쪽·계장초·샤프란·울금·홍화·황련·황벽·오미자·백년초등을 사용한다.

노란색 계열은 황벽·치자·금잔화·황련·국화·억새·양파껍질, 빨강색은 홍화·소목·오미자, 자주색은 포도껍질·자초·소목·흑두, 자주색은 자초·소목·오배자·흑두, 녹색계통은 시금치·쑥·감국·수국·등나무·은행나무 등이 사용된다.

장명 스님은 “이밖에 파랑, 적갈, 황갈, 회색, 검정 등의 색상을 연출해주는 다양한 소대들이 있다”면서 “두 가지 이상의 염료를 섞어 중간색으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 정명스님은 누구?
정명 스님은 1970년 우이동 금강사로 출가, 정태경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85년 청룡사(종로구 숭인동) 진우 스님으로부터 꽃과 등장엄 도구를 전수 받았다. 그리고 1986년부터 2005년까지 20년 동안 전주의 보운스님에게서 지화 제작 기술을 전수받았다.

보운 스님은 금륜 스님으로부터 지화제작기술을 전수받았고 전북지역의 수륙재·영산재·예수재 및 사월초파일 등 각종 지화 장엄을 담당해 왔다.

정명 스님은 연등회보존위원회 장엄도감을 맡고 있다.

연등회는 신라에서 시작돼 고려시대에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은 불교행사다. 팔관회와 더불어 신라 진흥왕대에 시작, 고려시대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은 불교 법회다. 2012년 4월6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지정번호 제122호.

또 장엄은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에게 올려 장식하는 일을 총괄적으로 운영, 책임지는 직책이다. 꽤나 어깨가 무거운 자리다.

▲ ‘향기 나는 종이꽃’ 주인공 정명 스님의 첫 개인전이 열린다.

벌써부터 정명 스님의 전시회가 기대된다. 4월14~18일 사이 펼쳐지는 이번 전시회는 스님의 첫 개인전. 총 50여점이 선보인다.

봉축행사를 앞두고 진행되는 전시회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종로구 견지동) 로비와 나무갤러리에서 펼쳐진다. 오픈 커팅 식은 14일 오후3시. 입장료는 무료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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