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久菴) 한백겸…물이촌에 머무르며 편안함과 즐거움 얻으려 했던 만년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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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久菴) 한백겸…물이촌에 머무르며 편안함과 즐거움 얻으려 했던 만년의 소망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2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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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㊾
▲ 구암 한백겸이 지은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 개인이 저술한 최초의 역사지리서다.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명길(鳴吉). 개인이 저술한 최초의 역사지리서라고 할 수 있는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의 저자다. 17세기 초에 저술된 이 책은 실증적이고 고증적인 역사 연구와 서술로 18세기에 출현한 실학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백겸은 ‘구암(久菴)’이라는 자신의 호의 유래에 대해 ‘물이촌구암기((勿移村久菴記)’라는 글에서 자세하게 설명해놓았다.

그는 만년(晩年)을 행주산성 아래에 있는 경기 양주 수이촌(水伊村)에서 지냈는데, 그곳은 아우 한준겸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 자리를 잡고 생애를 마치기로 결심한 뒤 한백겸은 아예 ‘평생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수이촌을 물이촌(勿移村)이라고 고쳤다.

그리고 자신이 거처하는 방 역시 ‘오래 머무르다’는 뜻의 ‘구(久)’ 자를 취해 ‘구암(久菴)’이라고 짓고 자호(自號)로 삼았다.

그러면서 ‘구즉안(久則安: 오랫동안 머무르면 곧 편안하다)’와 ‘안즉락(安則樂: 편안하면 곧 즐겁다)’’을 언급하고, 다시 즐거움에 이르게 되면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 둘 수가 없다고 했다. 이에 옮기려고 해도 옮길 수 없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얘기다.

한백겸이 물이촌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면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으려고 했던 만년의 소망을 담아 지은 호가 바로 ‘구암(久菴)’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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