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촌(象村) 신흠…세속의 명예와 이익 초탈한 뜻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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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象村) 신흠…세속의 명예와 이익 초탈한 뜻과 철학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0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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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55)
▲ 상촌 신흠의 간찰.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경숙(敬叔). 조선 중기 한문학을 대표하는 4대 문장가를 일컫는 이른바 ‘계택상월(谿澤象月)’ 중 ‘상(象)’은 신흠의 호인 ‘상촌(象村)’을 가리킨다.

문장력이 뛰어나 각종 외교문서와 의례문서의 작성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학문에도 깊은 식견을 갖춰 명성이 높았다.

광해군 때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해서 크게 핍박받았으나 인조반정 후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 일컬어지는 문형(文衡)의 자리인 예문관 및 홍문관의 대제학과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경기 금촌(金村)에 있던 자신의 별장 옆 상두산(象頭山) 아래에서 한때 전원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상촌(象村)’이라는 호는 이 산의 이름을 취한 것이다.

또한 신흠은 ‘현옹(玄翁)’이라는 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현(玄)’ 자는 세속의 명예와 이익에 초탈한 신흠의 뜻과 철학을 나타내고 있다.

그가 직접 지은 ‘현옹자서(玄翁自敍)’라는 글에서 세상의 명성과 출세에 연연해하지 않았던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긍심을 기록하기도 했다.

즉 ‘현옹(玄翁)은 누구인가?’라고 자문하면서 문장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자신은 문장을 일삼지 않았고, 조정에서 벼슬하면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자신은 벼슬에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고, 죄를 뒤집어쓰고 멀리 유배형에 처해졌지만 자신은 특별히 죄에 신경 쓰거나 흔들리지 않았고, 부귀와 이익을 얻더라도 거기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호를 ‘현옹(玄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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