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당(澤堂) 이식…“홀로 있어도 두려워 않고 세상 피해 살아도 걱정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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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당(澤堂) 이식…“홀로 있어도 두려워 않고 세상 피해 살아도 걱정 않는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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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59)
▲ 택당 이식의 문집 『택당선생집』.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여고(汝固). 조선 중기 최고의 문장가 중 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문학사에서는 이 시기의 한문 4대가(四大家)를 가리켜 ‘계택상월(谿澤象月)’이라고 한다. 이는 계곡(谿谷) 장유·택당(澤堂) 이식·상촌(象村) 신흠·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호(號)에서 각각 첫 글자씩을 따서 붙여진 명칭이다.

특히 이들 4대가 중에서도 이식은 계곡 장유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문장을 자랑했다.

이식은 광해군 때(1610년)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갔으나 인목대비의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백아곡(白鴉谷: 현재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소재)에 택풍당(澤風堂)를 짓고 은둔의 삶을 살았다.

본래 이식의 집안은 율곡 이이의 학통을 이어받은 서인 계열의 핵심이었다. 훗날 서인 노론의 적통(嫡統)을 이은 우암 송시열이 자신의 스승인 사계 김장생과 더불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식을 거론할 정도였다.

이식이 벼슬에 나아간 광해군 시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북인이 권력을 장악하고 서인 세력은 핍박을 받아 크게 위축되어 있을 때였다.

이 때문에 이식은 세상사로부터 물러나 거처할 곳을 찾으려고 『주역』의 괘(卦)를 살펴보았는데, 때마침 ‘택풍대과(澤風大過)’가 나왔다.

이 괘에는 ‘독립불구 둔세무민(獨立不懼 遯世无悶)’, 즉 ‘홀로 서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피해 살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

이식은 이 괘와 구절이야말로 자신의 마음과 뜻에 꼭 들어맞는다고 여겨 자신이 거처하는 곳을 ‘택풍당(澤風堂)’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때부터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택당(澤堂)’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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