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나이가 들수록 가까워지는 속물 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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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나이가 들수록 가까워지는 속물 근성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10 0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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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56)
 

[한정주=역사평론가] 얼굴에 은근하게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氣色)을 띤 사람과는 더불어 고상하고 우아한 운치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의 가슴속에는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이 없다. (재번역)

眉宇間 隱然帶出澹沱水平遠山氣色 方可與語雅致 而胷中無錢癖. 『선귤당농소』

얼굴에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지금까지 만나고 본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지만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재물을 탐하는 속물의 티를 벗은 사람은 어떠한가? 20〜30대 때에는 그러한 사람을 만났던 것도 같다. 그러나 40세 이후로는 그와 비슷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속물의 티를 벗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속물에 가까워지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든다.

나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20대 시절 가장 뜻이 맑고 기상이 높았지 않나 싶다. 30대 시절에는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갈팡질팡 우왕좌왕 방향을 잃고 헤매 다녔다.

40세 이후 글을 쓰면서 다시 20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재물과 명예를 탐하는 마음만 커져 오히려 속물에 더 가깝게 되어버렸다.

아차! 곰곰이 생각해보니 20대 초반 읽었던 책 속에서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을 본 것도 같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속의 한스 숄과 죠피 숄,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속의 칼 마르크스, 『레닌의 추억』 속의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옥중수고』 속의 안토니오 그람시, 『동지를 위하여』 속의 네스토 파즈, 『아리랑』 속의 김산,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속의 신동엽, 『시여, 침을 뱉어라』 속의 김수영, 『어느 청년 노동자의 죽음』 속의 전태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속의 윤상원, 『나의 칼 나의 피』 속의 김남주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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