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湛軒) 홍대용①…“과학자를 꿈꾼 선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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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헌(湛軒) 홍대용①…“과학자를 꿈꾼 선비의 집”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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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㉛
▲ 청나라 학자 엄성(嚴誠)이 그린 담헌 홍대용의 초상화.

[한정주=역사평론가] 홍대용의 호 ‘담헌(湛軒)’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충청도 청원군 수신면(修身面) 장산리(長山里) 수촌(壽村) 마을에 있던 집에 붙여진 이름이다.

‘담헌’이란 집의 이름은 홍대용이 12살 때부터 스승으로 섬겼던 미호(渼湖) 김원행이 지어줬는데 ‘담(湛)’이라는 글자에 담긴 대의(大意)를 훗날 홍대용은 ‘텅 비고 밝으며 넓어서 바깥 사물에 연루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나중에 자세하게 소개하겠지만 홍대용이 1765년 청나라의 수도 연경에 가서 사귄 중국의 지식인 반정균은 ‘담(湛)’이란 글자에 담긴 의미를 두 가지로 해석하면서 홍대용의 사람됨과 행동이 그 뜻에 적합하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먼저 반정균은 군자의 도(道)란 마음에 잡된 생각이나 재물을 탐하는 욕심이 없는 것인데 홍대용의 몸가짐이 맑고 밝으며 집은 텅 비어 깨끗하니 ‘담(湛)’이라는 글자의 뜻에 합당하다고 하였다. 또한 사람의 천성(天性)과 천명(天命)을 다루는 성명(性命)의 학문을 강론할 때 그 말이 크게 순수하고 진실해서 또한 ‘담(湛)’이라는 글자의 뜻에 적합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볼 때 스승 김원행이 홍대용에게 지어준 ‘담헌’이라는 호는 욕망과 이욕(利慾)에 마음을 빼앗겨 재물이나 권력을 탐하는 것을 경계하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일찍이 박지원과 교제하며 명문가의 자제라는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고 과거시험을 통한 입신출세를 거부한 채 이용후생과 경세제국의 학문에 온 마음과 온힘을 쏟았던 홍대용의 순수하고 담박했던 삶과 닮아있는 호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여느 사대부가의 자제라면 과거급제를 통한 입신양명에 심혈을 기울였을 20대와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도리어 과거시험을 위해 공부할 뜻을 완전히 접어버린 홍대용은 ‘담헌’이라고 이름붙인 시골집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지냈던 것일까? 그가 이곳에서 무엇을 했는가를 온전히 알았을 때 비로소 ‘담헌’이라는 호에 담긴 홍대용의 꿈과 포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홍대용이 청나라 사신단의 서장관(書狀官)이 된 계부(季父) 홍억을 따라 청나라 연경에 갔던 1765년(영조 41년) 그의 나이 35세 때로 시간을 되돌려보아야 한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청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온 체험을 기록으로 남긴 연행록(燕行錄)은 오늘날까지 수백 권이 전해지고 있을 만큼 그 숫자가 많다. 대개 사람들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연행록의 백미(白眉)로 알고 있지만 사실 홍대용의 연행록인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 역시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노가재(老稼齋) 김창업의 『노가재연행록(老稼齋燕行錄)』과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3대 연행록 중 하나로 일컬어질 정도로 걸작이다.

『을병연행록』이라는 제목은 홍대용이 을유년(乙酉年)인 1765년 11월2일 한양을 떠나 연경에 도착한 후 병술년(丙戌年)인 다음해 5월2일 고향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붙여졌다. 을유년과 병술년에서 머리글자를 따와 『을병연행록』이라고 지은 것이다.

특히 『을병연행록』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은 홍대용이 당시 동아시아 인문학의 중심지이자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보고(寶庫)요 ‘책의 바다’로 크게 유명세를 떨쳤던 연경의 서점가 유리창(琉璃廠)의 한 골목인 건정동(乾淨衕)에서 청나라 항주(杭州) 출신의 지식인 세 사람과 개인적인 만남을 갖고 천애지기(天涯知己)를 맺은 일이다.

이들은 당시 나눈 교류와 우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홍대용이 귀국한 후부터 죽을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서신과 인적 왕래를 통해 조선과 청나라를 오고 가는 친교를 맺었다.

이러한 일은 청나라는 물론이고 이전 왕조인 명나라에 갔던 조선의 어떤 지식인에게서도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무후무한 지성사적 사건(?)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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