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참신하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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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참신하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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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① 창신(創新)의 미학①
 

[한정주=역사평론가] 좋은 글의 첫째 조건은 무엇보다 참신하고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 쓴 글과 뛰어난 문장이라고 하더라도 진부하거나 상투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죽은 글이고 또한 다른 사람의 글을 모방하거나 본뜬 것이라면, 그것은 가짜 글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덕무는 살아있는 글과 죽은 글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다.

“무릇 시문이란 자구 하나하나마다 한결 같이 그 정신이 유동해야만 살아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진부한 것을 답습하기만 한다면 죽은 글이 될 뿐이다. 일찍이 육경(六經)의 글 중에 정신이 살아있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덕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내제(內弟)의 원고에 쓰다(題內弟稿)’>

글을 쓰는 사람의 참신하고 창의적인 정신이 담겨 있고 옛사람의 글을 진부하게 답습하지 않는 것만이 살아있는 글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이덕무는 수필집이자 수상록인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옛 사람을 답습한 글을 인면창(人面瘡), 즉 사람의 몸에 나는 종기나 부스럼이라고 한다. 도대체 무슨 물건을 치료약 대신 사용하여 재빨리 그 사람의 입을 막아버려야 할 지 모르겠다”라고 질타했다.

가짜 글과 참된 글의 차이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박지원은 일찍이 이서구의 문집 중 하나인 『녹천관집(綠天館集)』에 서문을 써 주면서 자신이 평생 실천한 글쓰기 철학의 첫 번째 테제가 바로 “비슷한 것은 가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모방하거나 답습한 글이란 그 본뜨거나 흉내낸 글에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오히려 가짜 글이자 죽은 글임을 증명할 뿐이라는 얘기다.

“옛글을 모방하여 글 짓는 일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 보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실제 모습과 거울 속 모습은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반대인데, 어떻게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물속에 모습이 비추듯 하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근본과 줄기가 거꾸로 보이는데, 어떻게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림자가 자신을 따르듯 하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낮에는 난쟁이가 되었다가 해가 지면 키다리가 되는데, 어떻게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림이 본 모습을 묘사하듯 하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걷는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소리가 없는데, 어떻게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끝내 옛글과 비슷해지기 어렵다는 말인가?

그런데 도대체 왜 옛글과 비슷해지기를 바라는가? 비슷한 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진리’가 아닌데.

세상 사람들은 서로 같은 것을 꼭 닮았다는 뜻으로 ‘혹초(酷肖)’라고 일컫는다. 또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것을 실제 모습과 흡사하다는 뜻으로 ‘핍진(逼眞)’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참 진(眞)’이나 ‘닮을 초(肖)’ 속에는 이미 ‘거짓 가(假)’나 ‘다를 이(異)’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배울 수 있는 일이 있다. 또 전혀 다르면서도 서로 비슷한 것도 있다. 그래서 말은 달라도 통역으로 서로의 뜻을 전할 수 있고, 전서(篆書)·예서(隸書)·초서(草書)는 글자체가 다르지만 모두 문장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형상은 서로 달라도 마음은 서로 같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살펴보자면 마음이 비슷한 것은 내면의 뜻과 의지인 반면 형상이 비슷한 것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박지원, 『연암집(燕巖集)』, ‘녹천관집 서문(綠天館集序文)’>

이때 이서구는 여러 해 동안 박지원에게 글을 배우는 한편 스스로 글을 짓는 것을 즐겨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글 가운데 단 한 마디라도 조금 새로운 것이 나오거나 단 한 글자라도 기이한 것이 발견되면 사람들은 “옛글에도 이러한 것이 있느냐?”고 묻고서 이서구가 “옛글 중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벌컥 화를 내며 “어찌 감히 이런 글을 짓느냐!”고 야단을 치곤했다.

박지원에게 옛글을 모방하거나 답습하는 것은 가짜 글을 짓는 것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을 받았던 이서구는 당혹스럽고 답답한 마음에 스승에게 가서 “옛글에 이러한 내용이나 표현이 있다면 제가 어찌 다시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한 다음 의견을 구한다.

‘옛글을 모방할 것이라면 구태여 공을 들여 새롭게 글을 써서 무엇 하겠느냐?’는 이서구의 주장에 박지원은 기특한 나머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참으로 옳구나. 이미 끊어진 학문을 일으킬 만한 말이구나. 창힐이 글자를 만들 때 옛것에서 모방했다는 말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공자의 수제자였던 안연은 학문을 좋아했지만 저서는 남기지 못했다.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창힐이 글자를 만들 당시를 떠올리고, 안연이 미처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못한 곳을 찾아 저술한다면 그때서야 글은 올바른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 네 글이 다른 사람에게 노여움을 산다면 공경하는 태도를 갖추어 아직 널리 배우지 못해 옛글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사과하거라. 그런데도 계속 잘못되었다고 따져 묻거나 노여움을 풀지 않으면 조심스럽게『서경(書經)』의 은고(殷誥)와『시경(詩經)』의 주아(周雅)는 까마득히 먼 옛날인 중국의 하(夏)나라·은(殷)나라·주(周)나라 3대 시절에 유행하던 문장일 뿐이고, 승상 이사와 우군 왕희지의 글씨는 오래 전 진(秦)나라와 진(晉)나라에 유행하던 속필(俗筆)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해 주어라.” <박지원, 『연암집』, ‘녹천관집 서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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