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渼湖) 김원행…동호·서호와 한양 부근 최고 경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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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渼湖) 김원행…동호·서호와 한양 부근 최고 경승지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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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71)
▲ 미호 김원행의 초상.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백춘(伯春). 청음 김상헌의 후손으로 노론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숙종과 경종 연간의 당쟁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두 형이 죽음을 맞자 벼슬할 뜻을 버리고 평생 학문에만 전념했다.

영조가 즉위해 노론 세상이 된 후에도 벼슬에 나가지 않은 채 석실서원(石室書院)에 칩거하며 제자 양성과 학문 연구에 열중했다.

비록 한적한 시골에 묻혀 살았지만 조야(朝野)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산림(山林)으로 그 학문적·정치적 영향력이 막대했다. 특히 그가 경영한 석실서원은 18세기 학계와 문화예술계를 주도한 걸출한 인물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노론 명문가의 자제로 훗날 고위 관료가 된 이들 외에도 홍대용, 정철조, 황윤석 등 자연과학과 서양 문물에 밝았던 실학자 역시 많았다. 심지어 박지원은 김원행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석실서원으로 갔다가 홍대용을 만나 평생을 함께하는 동지가 되기도 했다.

지금의 한강 주변 경기 남양주시 덕소와 수석동 그리고 강 건너편의 미사리 일대를 조선시대에는 미호(渼湖)라고 불렀다.

동호(東湖: 지금의 옥수동 일대), 서호(西湖: 지금의 마포와 서강 일대)와 함께 미호(渼湖)는 한양 부근의 최고 경승지(景勝地)로 꼽힐 만큼 풍광이 수려했다고 한다.

인조 때 김상헌이 이곳에 거처한 이후 대대로 그의 후손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았는데 김원행이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들을 가르친 석실서원은 미호(渼湖)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원행은 이 아름다운 강을 자신의 호로 삼아 ‘미호(渼湖)’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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