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와 황대구만 먹던 망아지…풍설조차 허투루 다루지 않았던 기록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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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와 황대구만 먹던 망아지…풍설조차 허투루 다루지 않았던 기록 정신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1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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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65)
▲ 곤마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한정주=역사평론가] 자여역(自如驛)에 사는 어떤 사람이 망아지를 새로 샀다. 그런데 그 망아지는 꼴이나 콩을 먹지 않았다.

시험 삼아 오곡(五穀)을 던져 주었지만 역시 먹지 않았다. 사람이 먹는 음식에 이르기까지 시험 삼아 주었는데 모두 먹지 않았다. 그런데 소주(燒酒)를 주자 비로소 흔쾌히 마셨다.

또한 황대구(黃大口)를 얇게 저며서 주자 잘 먹었다. 그 후 연속해서 소주와 황대구 두 가지 음식을 먹이니 하루에 7백 내지 8백리를 갔다. 정축년(丁丑年)에 금주령이 생긴 뒤 먹지 못해 죽고 말았다. (재번역)

自如驛人 新買兒馬 不食蒭豆 試投五糓亦不食 至於人所食者試之皆不食 以燒酒與之始喜飮 又剉黃大口與之善吃 其後連喂二物 日行七八百里 丁丑歲 酒禁後不食死. 『이목구심서 2』

박물학이 막 세상에 등장했을 때, 이 새로운 지식 현상을 어떻게 부를까 하다가 ‘지괴소설(志怪小說)’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전의 시각에서 볼 때 학문과 지식과 저술의 대상이 아닌 기이하고 괴이한 일과 잡다한 사물을 다룬 짧은 글과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소설(小說)’은 오늘날의 뜻과는 전혀 다른 그냥 ‘짧은 글과 기록’이라는 뜻이다.

유학과 성리학에 길들여진 전통적인 지식인의 관점에서 보면 소주와 황대구만 먹던 망아지에 관한 이야기는 저자거리의 풍설(風說)에 불과할 뿐이다. 입에 담는 것도 체면을 망칠 일인데, 어떻게 감히 글로 옮겨 적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박물학의 지적 전통 속에서 글을 썼던 이덕무에게는 다시 없이 특별한 글감이자 흥미로운 소재였다.

기자들이 어떤 것이 기사거리가 되느냐를 말할 때 하나의 예로 드는 아주 재미있는 말이 있다.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거리가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거리가 된다.”

왜?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은 아주 특별한, 즉 기이하고 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덕무는 기자의 심정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이 글은 마땅히 그렇게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자여역(自如驛)은 오늘날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 있던 고려와 조선 시대의 역참이라고 한다. 한양 인근뿐만 아니라 먼 남쪽 궁벽한 지방의 풍설조차 허투루 다루지 않았던 투철한 기록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조선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왕조실록』과 『의궤(儀軌)』와 같은 ‘기록 유산’과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문집과 문헌에 남긴 ‘기록 정신’이라고.

데카르트의 표현을 빌자면 이덕무를 비롯한 그들의 삶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나는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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