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지기(知己)를 얻게 되면…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만남과 맺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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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지기(知己)를 얻게 되면…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만남과 맺어짐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22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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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68)
 

[한정주=역사평론가] 만약 한 사람의 지기(知己)를 얻는다면 나는 마땅히 10년 동안 뽕나무를 심을 것이고, 1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다섯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할 것이다.

10일에 한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한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오색(五色)의 실을 따뜻한 봄날 햇볕에 쬐어 말려서 연약한 아내로 하여금 수없이 단련한 금침(金針)을 지니고 내 지기(知己)의 얼굴을 수놓게 해 기이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 것이다.

그것을 높게 치솟은 산과 한없이 흐르는 물 사이에 걸어놓고 서로 말없이 마주하다가 해질녘에 가슴에 품고 돌아올 것이다. (재번역)

若得一知己 我當十年種桑 一年飼蠶 手染五絲 十日成一色 五十日成五色 曬之以陽春之煦 使弱妻 持百鍊金針 繡我知己面 裝以異錦 軸以古玉 高山峨峨 流水洋洋 張于其間 相對無言 薄暮懷而歸也. 『선귤당농소』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알아주는 이(知己)’가 있다면, 그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유독 사람과 사람 사이만 그렇겠는가? 사람과 자연 사이 역시 그렇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은 매화와 달을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청송당(聽松堂) 성수침은 소나무를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허난설헌(許蘭雪軒)은 난초와 눈을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호생관(好生官) 최북은 붓을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차(茶)를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석치(石痴) 정철조는 돌을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연려실(燃藜室) 이긍익은 명아주 지팡이를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기하(幾何) 유금은 기하학(幾何學)을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풍석(楓石) 서유구는 단풍나무를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희는 산을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삼혹호(三酷好) 이규보는 거문고와 시와 술을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교산(蛟山) 허균은 이무기를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초정(楚亭) 박제가는 초사(楚辭)를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이덕무는 무엇을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는가? 그는 매미와 귤과 해오라기와 매화를 자신을 알아준 벗으로 삼았다.

이들의 만남과 맺어짐은 살아서는 몇 십 년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죽어서는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만남과 맺어짐이 되었다.

청나라의 소품작가(小品作家) 장조(張潮)가 지은 수필집 『유몽영(幽夢影)』 속 한 구절의 사유 방식과 묘사 기법을 취해 글로 옮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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