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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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2.16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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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외압 의혹에 대한 단상

 

▲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故) 황유미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지난 2월6일부터 상영되고 있다. 삼성이라는 민감한 소재와 내용으로 투자사가 없어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두레 방식으로 제작돼 개봉 전부터 관심을 끌었던 영화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월14일 현재 『또 하나의 약속』은 전국 169개 스크린에서 누적관객수 28만7581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6위에 올라있다. 공중파의 여러 영화 관련 프로그램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면서 놀라운 흥행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 국가권력을 소유하려는 거대한 재벌 집단의 음모를 파헤친 장편소설 『바벨탑의 제왕』

그러나 흥행성적에 비하면 상영관 수는 여전히 적다. 개봉 전 예매율 1위를 차지했지만 대형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의 눈치보기로 스크린 수가 전혀 늘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 2월8일 192개였던 스크린수는 일주일만에 169개로 줄어들었다.

실제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 전부터 외압 의혹이 쏟아졌다. 메가박스는 당초 영화관수를 15개에서 4개로 줄였다가 항의를 받고 11개로 조정했는가 하면 롯데시네마 포항, 건대, 서울대입구점 등에서는 단체관람 예매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었다.

김태윤 감독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매율도 높고 좌석점유율도 높은 상황에서 이해가 안 된다”며 “외압이 있었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약속』과 관련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외압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김태윤 감독도 기획단계에서부터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을 소재로 한 고발성 짙은 영화가 가능하겠느냐는 반대에 부딪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 출판 당시 세간의 비난을 받았던 삼성생명의 기아자동차 주식 매집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씨춘추』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삼성그룹 법무팀장으로 근무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비자금 폭로 후 펴낸 『삼성을 생각한다』가 대표적이다. 삼성의 외압이든, 언론사의 눈치보기든 이 책의 광고는 모두 거부됐다.

사실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삼성의 외압은 노골적이었다.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사장된 삼성 관련 책들이 이를 반증한다. 1995년 출판된 『바벨탑의 제왕』이 그랬고, 1996년 『나비야 청산가자더니』, 1997년 『이씨춘추』가 그랬다.

『바벨탑의 제왕』은 국가권력을 소유하려는 거대한 재벌 집단의 음모를 파헤친 장편소설이며 『이씨춘추』는 출판 당시 세간의 비난을 받았던 삼성생명의 기아자동차 주식 매집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친형인 이병각씨의 이복아들인 덕희씨가 부친의 묘를 찾은 사진. 그의 생모 김송자씨의 자전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더니』에 실려있다.

또 『나비야 청산가자더니』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친형 이병각씨와 부부의 연을 맺고 1남2녀를 낳았지만 무참히 버려진 요정 청운각의 동기(童妓, 어린기생) 김송자씨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담고 있다. 이병각씨는 삼성제일병원 명예원장이었던 이동희씨의 부친이기도 하다.

이처럼 광고가 거부되고 책이 사라질 때마다 삼성은 직접적인 개입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이번 『또 하나의 약속』 상영관 관련 외압 의혹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가 누구인지까지는 감출 수 없다. 오히려 진실 앞에 분노만 더 쌓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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