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포(稼圃) 임상옥…“채마밭에서 곡식이나 채소 가꾸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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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포(稼圃) 임상옥…“채마밭에서 곡식이나 채소 가꾸며 살고 싶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5.03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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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83)
▲ 가포 임상옥의 초상.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경약(景若). 평안북도 의주(義州) 출신의 무역상인이다.

최초로 조선과 청나라 간 국경지대의 인삼무역권을 독점해 큰 부(富)를 축적했고, 나이 43세 때인 1821년 사신을 수행해 연경(북경)에 들어가서는 그곳 상인들의 인삼 불매동맹(不買同盟)을 천재적인 상업 수완으로 깨뜨리고 막대한 재화(財貨)를 벌어들였다.

당시 그는 조선 전역은 물론이고 청나라에까지 ‘조선 제일의 부자’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거상(巨商)이자 거부(巨富)였다.

또한 굶주린 백성과 수재민을 구제한 공적을 인정받아 상인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곽산군수(郭山郡守)와 구성부사(龜城府使)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세도가문과 갈등을 빚다가 비변사(備邊司)의 논척(論斥)을 받아 사퇴한 다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자그마한 집에 거처하면서 소박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의 호 ‘가포(稼圃)’ 역시 조선 최고의 부자였던 사람의 호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청빈하고 소박하다. 그 호에는 채마밭에서 곡식이나 채소를 가꾸며 살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제 말년의 임상옥은 대저택을 버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은 재산을 빈민구제에 쓰게 한 뒤 자그마한 집에 살면서 스스로 채마밭을 가꾸며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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