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癖)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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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癖)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람이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5.0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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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① 창신(創新)의 미학⑤
▲ ‘초당독서(草堂讀書)’, 종이에 담채 37.0x59.0cm, <개인 소장>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러한 글쓰기 철학을 바탕 삼아 박지원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조선 사람의 감정과 생각, 곧 성정(性情)을 표현한 이덕무의 시야말로 고문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는 시의 경전인 『시경』에 수록되어 있는 여러 나라의 국풍(國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조선 고유의 독창적인 시, 즉 ‘조선의 국풍(國風)’이라 부를 만하다고 극찬했다.

즉 박지원이 살던 시대의 기준에서 보자면 『시경』의 시는 비록 고문(古文)이고 이덕무의 시는 금문(今文)이지만 후대 사람들에게는 『시경』의 시도 고문이고 이덕무의 시도 고문이 된다.

그런데 이덕무의 시는 『시경』의 시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조선 사람의 성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경』에 실려 있는 중국 여러 나라의 시, 곧 국풍 못지않게 이덕무의 시 역시 고문, 즉 조선의 국풍으로 마땅히 숭상 받아야 한다.

“지금 이덕무는 조선 사람이다. 산천과 풍속과 기후가 중화와 다르고 언어와 민요 역시 한나라나 당나라와 같지 않다. 그런데 만약 작법이 중화를 본받고 문체는 한나라와 당나라를 답습한다면 나는 그 작법이 고상해질수록 그 뜻은 참으로 비루해지고 또한 문체가 비슷할수록 그 언사는 거짓일 뿐이라는 것을 본다.

우리나라가 비록 중국의 좌해(左海)에 위치한 궁벽한 나라이지만, 이 역시 천승(千乘)의 나라이다. 신라와 고려가 비록 검박(儉薄)했다고 하나 민간의 아름다운 풍속이 많았다. 그 방언을 문자로 옮겨 적고 그 민요에 운율을 달면 자연스럽게 문장이 되었다. 이에 진기(眞機)가 발현되었다.

중화를 본받거나 추종하는 일도 없었고 한나라와 당나라를 거짓으로 빌려오지도 않았다. 고요하게 현재(現在)를 좇아 곧바로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마주한다. 오직 이덕무의 시가 그렇다.

오호라! 시의 경전인 『시경(詩經)』에 실린 300편의 시는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표현하지 않은 것이 없고, 민간의 남녀가 나눈 말들을 문자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패국(邶國)과 회국(檜國) 사이에는 지리적 이유 때문에 풍속이 같지 않다. 강수(江水)와 한수(漢水) 부근에 사는 백성들은 제각각 풍속이 다르다. 그러한 까닭에 시를 채록하는 사람은 여러 나라의 국풍(國風)을 만들어 그곳 백성들의 성정(性情)을 고찰하고 그 민요와 풍속을 징험했던 것이다.

따라서 어찌 이덕무의 시가 옛 시와 비슷하지 않다고 다시 의혹을 품겠는가! 만약 다시 중국에 성인(聖人)이 나와 여러 나라의 풍속을 관찰한다면 이덕무의 ‘영처고(嬰處稿)’에 실린 시들을 깊이 헤아려 우리 조선의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되고, 우리 조선 사람의 성정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보건대 이덕무의 시를 마땅히 ‘조선의 국풍’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박지원, 『연암집』, ‘영처고 서문’

조선의 문사들 중 ‘창신의 문장 미학’을 가장 잘 표현한 이들은 앞선 문장론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다름 아닌 북학파 그룹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의 수많은 글을 여기에 모두 소개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 그 글 가운데 단 한 편의 글을 꼽을 경우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자신 있게 박제가의 ‘백화보서(百花譜序)’를 추천할 것이다. 이 글의 참신한 표현과 창의적인 작가 정신이 단연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박제가는 여기에서 당시 사람들이 병통(病痛)이나 병증(病症)으로 여겨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벽(癖)’에 대한 편견을 기발하고 독창적인 발상과 참신한 표현으로 전복하고 해체해 버린다.

이전 시대까지 ‘벽’은 기피하거나 부정해야 할 무엇이었다면 이제 ‘벽’은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미지(未知)와 미답(未踏)의 세계를 홀로 개척하는 정신의 소유자와 전문의 기예를 익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긍정의 가치로 재발견·재창조된다.

“벽(癖)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람이다. 대개 벽이라는 글자는 ‘병 질(疾)’ 자와 ‘치우칠 벽(辟)’ 자를 따라 만들어졌다. 병 가운데 무엇인가에 지나치게 치우친 것을 벽이라고 한다. 그러나 독창적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터득하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의 기예를 습득하는 일은 오직 벽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김군(金君)이 마침내 화원(花園)을 만들었다. 꽃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눈 한번 꿈쩍하지 않는다. 꽃 아래에 자리를 깔고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손님이 와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을 본 사람들은 반드시 미친놈이거나 멍청한 놈이라고 생각해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조롱하며 욕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김군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런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만다.

김군의 마음은 세상 온갖 사물을 스승으로 삼고 있다. 김군의 기예는 천고(千古)의 옛 사람과 비교해도 탁월하다. 김군이 그린 『백화보(百花譜)』는 꽃의 역사에 길이 남을 공훈으로 기록할 만하고, 김군은 향기의 나라에서 배향(配享)하는 위인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벽의 공적이 진실로 거짓이 아니다!

오호라! 저 두려워 벌벌 떨고 깔보고 업신여기면서 천하의 큰일을 그르치면서도 스스로 지나치게 치우친 병통이 없다고 뻐기는 자들이 김군의 화첩(畵帖)을 본다면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박제가,『정유각집(貞蕤閣集)』‘백화보서’

앞서 소개했던 홍석주의 동생이자 정조의 사위인 부마도위(駙馬都尉)로 19세기 조선의 문학 및 문화예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 중 한 사람인 홍현주는 아예 ‘벽설(癖說)’이라 제목 붙인 글을 통해 ‘집과 진귀한 물건, 각종 물건은 물론이요 심지어 부스럼 딱지를 즐겨 먹거나 냄새나는 음식을 좋아하는 벽(고질병)을 갖고 있는 이’들을 소개하면서 그림을 심하게 좋아하는 자신의 벽 또한 부스럼 딱지를 즐겨 먹고 냄새나는 음식을 좋아하는 이들의 벽에 가깝다면서 자신의 벽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에 탐닉하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진정 그림의 미학을 아는 소장가와 감식가는 자신과 같이 오로지 그림만을 몹시 즐기는 벽에 걸린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성현(聖賢)의 삶을 본받아 사는 것을 제일의 가치이자 덕목으로 숭상한 당시 사대부 사회의 시각과 의식 수준을 뛰어넘어 독창적인 경지에 오른 이가 아니라면 감히 쓸 수 없었을 글이다.

더욱이 지엄한 왕실의 일원인 자신을 부스럼 딱지나 냄새나는 음식을 즐겨 먹었던 괴벽한 사람과 비교한다는 것은 자칫 신분을 망각한 행동으로 비난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구태여 ‘벽설’이라는 고상한 형식의 제목까지 붙여 세상을 향해 공개적으로 벽을 가진 이들의 존재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긍정한다는 것은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장식할 개성적 자아의 출현을 내다보는 혜안을 갖추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

“벽(癖)은 병(病))이다. 대개 좋아하는 물건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좋아하는 정도가 심할 경우 곧 ‘즐긴다’고 말한다. 어떤 물건을 즐기는 사람이 그것을 즐기는 정도가 심할 경우 곧 ‘벽(癖)’이라고 말한다.

중국 전한(前漢)의 동중서와 서진(西晉)의 두예는 학문에 벽이 있는 사람이다. 당(唐)나라의 왕발과 이하는 시(詩)에 벽이 있는 사람이다. 남북조시대의 산수시인(山水詩人) 사령운은 세상 유람에 벽이 있는 사람이다. 북송(北宋)의 미불은 돌에 벽이 있는 사람이다. 동진(東晉)의 왕희지는 대나무에 벽이 있는 사람이다.

이와 같은 사람 외에도 왕왕 온갖 기능과 기예에 벽이 있는 사람이 있고, 궁실(宮室)과 진귀한 보물과 기물에 벽이 있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부스럼 딱지를 좋아하고 냄새나는 음식과 같은 종류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이들 또한 벽이 괴이한 경지에 접어든 사람이다.

나는 본래 별다른 기호(嗜好)가 없는 사람인데, 오로지 그림에 벽이 있다. 마음이 가는 고화(古畵)는 한 번 보면 비록 화폭이 찢어지고 두루마리가 망가졌다고 해도 반드시 무거운 값을 쳐주고 구입하고 만다. 그리고 마치 내 목숨과 같이 아끼며 소중히 다룬다. 어느 곳에 좋은 그림이 있다는 말이라도 들으면 즉시 마음을 쏟고 있는 힘을 다해 반드시 수중에 넣어 뜻을 이루었다.

바야흐로 그림을 부쳐놓고 눈으로 감상하다가 정신과 맞아 떨어질 때면 아침이 다 가도록 싫증이 나는 줄도 모르고 밤이 다 새도록 피곤한 줄도 모른다. 더욱이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배고픔도 알지 못할 지경이 되고 만다.

심하구나! 나의 벽이여. 앞서 말한 이른바 부스럼 딱지를 좋아하고 냄새나는 음식과 같은 종류를 즐기는 사람들과 거의 가깝구나! 그림이 오래된 것은 심하게 부식되고 훼손되어서 손이라도 대면 왕왕 부서지곤 한다. 내가 매번 그러한 그림을 볼 때마다 장차 시간이 흘러 아주 사라지지나 않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방유능(方幼能 : 방효량)이라는 사람은 본래 안개인지 구름인지를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벽의 개념에서 보자면, 그는 또한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 종이가 파손되거나 비단이 망가진 고화(古畵)를 마주하게 되면 방유능은 반드시 손수 풀을 발라 개장(改裝)했는데, 늙어서도 부지런히 애를 쓰며 손을 놓지 않았다.

바야흐로 그가 눈짐작으로 치수를 재어 손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자면 먹줄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고 한 자 한 치도 어긋나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동정(動靜)과 기거(起居)가 풀을 담은 그릇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았다.

그때에는 비록 천 가지 종류의 음식을 차려 잔치를 베풀어도 자신의 즐거움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신기하고 공교로운 기예로 만든 작품은 마치 포정(庖丁)이 소를 잡고 윤편(輪扁)이 수레바퀴를 깎는 솜씨와 거의 같아서 서로 막상막하라고 할 수 있었다.

이에 내가 소장하고 있는 고화(古畵) 중 부식되고 손상된 것들은 모두 방유능의 도움을 받아서 낡은 것을 새 것으로 만들어 그 수명을 연장하였다. 심하구나! 방유능의 벽이여. 나의 벽에 견주어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구나.

그림에 대한 나의 벽이 장황(裝潢 : 표구)에 대한 방유능의 벽을 얻어서 이미 망가진 고화(古畵)가 모두 완전하게 복구되었다. 한가로이 여유가 있는 날은 매번 그와 더불어 안석(案席)을 마주하고 앉아서 함께 그림을 감상하며 즐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그림에 심취해 있다 보면 하늘이 세상을 덮고 대지가 만물을 실어 나르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꼼짝도 하지 않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 앉아 있으며 세월이 다 지나간다고 해도 조금도 싫증을 내지 않는다. 심하구나! 나와 방유능의 벽이여. 이로 말미암아 ‘벽설(癖說)’을 써서 그대에게 준다.” 홍현주,『해거수발(海居溲勃)』, ‘벽설증방유능(癖說贈方幼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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