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빌렸다면…“윗사람의 후의 알지 못하는 무도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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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빌렸다면…“윗사람의 후의 알지 못하는 무도한 자”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5.07 0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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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81)
 

[한정주=역사평론가] 운장(雲章)은 “무릇 서적이 있다면 비록 좋아하고 아낀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옛적에 동춘선생(同春先生: 송준길)은 다른 사람에게 서적을 빌려주고 돌려받을 때 책 종이에 보푸라기가 일지 않으면 반드시 읽지 않았다고 여겨 크게 꾸짖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이 동춘선생에게 책을 빌려다가 미처 읽지 못했다. 꾸지람을 들을까 두려웠던 그는 책 위에 올라서 발로 밟고 몸을 눕혀 책을 헐고 더럽게 한 다음에 돌려주었다.

이러한 사람은 윗사람의 후의(厚誼)를 알지 못하는 무도한 자다.(재번역)

雲章曰 凡有書籍 雖愛惜者 不可不借人 昔同春先生借人書籍 人或還之 而紙不生毛 則必責其不讀 更與之 有某人者借書不讀 憚其呵責 踏卧卷上 使之壞汚 迺還之 此又不知長者厚誼也. 『이목구심서 4』

이덕무는 서얼 출신의 가난한 선비였다. 평생 굶주림과 추위에 허덕였던 그가 어떻게 2만 여권이 넘는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요즘처럼 공공도서관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때인데…. 의심해 볼 만한 일이다.

박지원의 기록과 증언을 찾아보았다. 이덕무는 온갖 서적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고 한다.

어떻게? 항상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 읽었다. 비록 몰래 책을 감추고 남에게 빌려주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이덕무만큼은 “진실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감탄하면서 빌려주기를 꺼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덕무가 책을 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전에 “이덕무의 눈을 거치지 않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을 무엇에 쓸 것인가?”라고 하면서 먼저 스스로 빌려주곤 했다.

이덕무가 살던 18세기 조선에는 중국 연경(북경)의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서양과 중국 관련 서적이 넘쳐났다. 이전 시대 조선의 지식인들이 저술한 서적들의 수집과 독서 열기 역시 대단했다.

당시 한양 안팎으로 많게는 4만여 권에서 적게는 수 천여 권의 서책을 소장한 장서가(藏書家)가 수십여 명 있었다고 한다. 현재 문헌상으로 확인 가능한 숫자가 이 정도다.

여러 문헌과 정황을 고려해 추측해 보건대 수천에서 수만 권에 이르는 서책을 소장한 장서가들이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렀던 것 같다.

이덕무의 절친한 사우(師友) 중 한 사람인 이서구 역시 만 권의 서책을 소장한 장서가였다. 이덕무가 2만여 권이 넘는 서책을 읽고 세상의 온갖 서적을 두루 탐독할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기반이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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