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과 천구(天球)…“평범함과 함께 특별함 갖춰야 진정한 문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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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 천구(天球)…“평범함과 함께 특별함 갖춰야 진정한 문장가”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5.13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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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86)

[한정주=역사평론가] 문장이란 다른 사람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에서 터득해야 한다. 내 마음은 그렇게 터득한 문장을 마치 천구(天球)처럼 좋아한다.

나의 조카 심계(心溪 : 이광석)가 표현하기를 “깊은 동굴에 검은 거미가 한가로이 휘감네(邃洞幽蛛虛自裊)”라고 하였다. 또한 나의 벗 기평자(騎萍子)가 묘사하기를 “황소가 뿔을 쫑긋 세워 빗소리 듣네(黃牛聽雨角崢嶸)”라고 하였다.

거미가 휘감을 때를 상상해 보라. 그 검은 다리가 한가로이 놀고 있는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소가 빗소리를 들을 때를 상상해 보라. 그 뿔을 쫑긋 세운 모습을 알 수 있다.

‘동굴[洞]’과 ‘비[雨]’의 표현과 묘사에 영자(影子 : 그림자)와 골자(骨子 : 실체)의 차이가 담겨 있다. (재번역)

文章 到人所難言處而會 余心愛之如天球 吾姪心溪子曰 邃洞幽蛛虛自裊 吾友騎萍子曰 黃牛聽雨角崢嶸 蛛裊時 想其脚幽虛可推也 牛聽時 想其角崢嶸可知也 洞與雨 影子骨子之間也. 『이목구심서 2』

평범함, 즉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더라도 다른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운 특별한 경지를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 평범함이 사람과 자연의 일부라면 특별함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평범하기만 하다면 혁신이 없다. 누군가는 평범함을 넘어 특별한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다.

문장 역시 마찬가지다. 일찍이 보지 못한 기이한 표현과 기발한 묘사가 나타나면 문장에도 대 혁신이 일어난다.

20세기 초 김택영은 자하 신위의 시집을 편찬하면서 그 서문에다가 이렇게 적었다.

“우리나라의 시(詩)는 고려의 익재 이제현(李齊賢)을 종주(宗主)로 삼는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선조(宣祖)와 인조(仁祖) 연간에 시인들이 이를 계승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옥봉 백광훈, 오산 차천로, 허난설헌, 석주 권필, 청음 김상헌, 동명 정두경 등 여러 시인들은 모두 ‘풍웅고화(豊雄高華)’의 취향을 띠었다. 영조(英祖) 이래로 시풍(詩風)이 크게 한번 변모해 혜환 이용휴와 금대 이가환 부자(父子) 그리고 형암 이덕무, 영재 유득공, 초정 박제가, 강산 이서구 등의 시인들은 혹은 기궤(奇詭)를 주된 것으로 하고 혹은 첨신(尖新)을 주된 것으로 삼았다.”

만약 ‘기궤(奇詭: 기이하고 괴상하다)’과 ‘첨신(尖新: 날카롭고 새롭다)’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18세기 조선에 새로운 문예 사조가 출현할 수 있었겠는가? 평범함과 함께 특별함을 함께 갖추어야 진정한 문장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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