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弘齋) 정조 이산⑦…“해와 달의 빛이 한 사람에 의해 널리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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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弘齋) 정조 이산⑦…“해와 달의 빛이 한 사람에 의해 널리 퍼져 나간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5.1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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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㉜
▲ 정조가 동궁 시절부터 국왕 재위기간 동안 쓴 시문(詩文)·윤음(綸音)·교지 및 편저 등을 모아 60권 60책으로 편집한 ‘홍재전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16호로 지정돼 있다.

[한정주=역사평론가] 앞서 언급했지만 정조는 184권 100책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저작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겼다.

『홍재전서』의 편찬 작업은 2차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제1차는 정조가 살아있던 1799년(정조 23년) 12월 이루어졌다.

1798년 가을 정조는 규장각의 각신인 서호수에게 자신의 어제(御製)를 편찬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호수가 사망하자, 다시 어제(御製)의 편집과 교정 작업의 지휘를 서영보에게 맡겼다.

그리고 1799년 12월21일 규장각에서는 2본의 필사본을 완성해 정조에게 올렸다. 이때 정조가 자신의 어제 필사본에 붙인 이름이 『홍우일인재전서(弘于一人齋全書)』였다.

그런데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정조의 저작집 이름은 『홍재전서』다. 이렇게 된 까닭은 정조가 사망한 직후에 규장각에서 다시 정조의 어제(御製)를 정리해 편찬하는 2차 작업을 하여 이듬해(1801년. 순조 1년) 12월11일 완성된 필사본을 순조에게 올렸고, 그 이름을 동궁(왕세손) 시절 정조가 처음으로 자호(自號)한 홍재(弘齋)를 취해 『홍재전서』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조가 생전에 간행한 자신의 문집에 이름 붙인 ‘홍우일인재(弘于一人齋)’는 그가 사용한 마지막 호라고 할 수 있다. 이 호는 『상서대전(尙書大傳)』 「우하전(虞夏傳)」에 나오는 ‘일월광화(日月光華) 홍우일인(弘于一人)’에서 의미를 취한 것이다.

“해와 달의 광화(光華: 빛)가 한 사람에 의해 널리 퍼져 나간다”는 뜻으로 정조는 이전 ‘만천명월주인옹’에서 달을 빌었듯이 여기에서는 달은 물론 해까지 빌어 밤낮없이 만백성에게 빛을 비추는 것이야말로 제왕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고 밝혔다.

당시 정조는 3단으로 된 보관함을 따로 만들어 『홍우일인재전서』라고 이름 붙인 문집을 간직했고, 다시 여기에다가 한 편의 글과 명문(銘文)을 지어 자신의 뜻을 밝혔다.

“『홍우일인재전서』는 곧 나의 저술(著述)이다. 나는 세 살 때부터 글을 배워서 대강 군자의 대도(大道)를 들었지만 말을 꾸미거나 글을 잘 짓는다고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근본이 되는 의론을 주고받거나 나랏일을 경영하면서 그 언어를 형용(形容)하고 그 명성과 공적을 꾸미고 다듬다보니 공교롭게 하지 않아도 저절로 공교로워졌다. 이것은 어찌 보면 내가 문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학문은 노(魯)나라의 공자와 추(鄒)나라의 맹자를 종주(宗主)로 삼고, 정치는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를 숭상하였다.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을 일컬어 덕목(德目)으로 삼고, 예의와 염치를 일컬어 세속의 규범으로 삼았다. 그리고 글과 문장은 의사(意思)를 전달하면 그뿐이었다.

본래 무엇을 모으거나 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흩어져 없어지더라도 내버려 두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문장을 이루는 것이 적지 않았다. 일찍이 재잘거리거나 흥얼대거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풍속이 내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있어서 마침내 시(詩)의 초고(草稿)는 불살라버리고 문장만 몇 편을 남겨놓았다.

내각(內閣: 규장각)을 설립하고 관청을 세워서 춘저(春邸: 동궁) 시절의 작품을 취해 1집(一集)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름을 좋아하여 자신이 죽고 난 뒤 마름을 가지고 제사 지내달라고 한 굴도(屈到)와 양조(羊棗: 대추)를 좋아한 증석(曾晳)처럼 다만 한 차례 제삿밥을 올리는 것일 따름이다.

그러나 종묘나 사직단에 올리는 제기(祭器)나 조정에서 임금을 배알할 때 입는 관복(官服)도 원래 그 시작은 들판의 나무나 누에고치에서 나왔다. 여기에 실린 나의 글 또한 그러한 것이다. 이른바 2집(二集), 3집(三集), 4집(四集)은 곧 각신(閣臣)이 저보(邸報)에 반포한 것과 사람들의 이목(耳目)에 흩어져 있던 것을 유형별로 모으고 부목(部目)을 나눈 것이다.

내가 일찍이 책상을 가깝게 두지 않고 하찮게 여긴 것이 지금까지 20여 년이나 되었다. 또한 미처 보고 듣지 못하거나 기록하여 싣지 못한 것은 나의 성급한 성격 탓에 문자로 세상을 희롱하거나 때때로 괴기(魁氣)를 부린 것이 있어서 그 글을 묶어둔 보자기를 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다른 사람을 대면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없으니 약간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가 의리가 더욱 밝아지고 규모가 더욱 정해지면 비로소 함께 편찬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겨울에 각신들이 유형별로 나누고 부목을 취한 초본을 또한 이미 정리하여 120권을 만들고 잘못을 바로잡아 다시 고쳐 베껴서 올렸는데 각각의 체제가 잘 구비되고 보존되어 있었다. 대악(大樂)을 완성하려면 한 가지 음악만 취해서는 안 되고, 훌륭한 요리를 만들려면 한 가지 맛만 취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어찌 회옹(晦翁: 주자)이 스스로 『목재고(牧齋稿)』를 편찬한 뜻이 아니겠는가.

스승이 있으면 도(道) 역시 있다는 말이 그러하지 아니한가. 마침내 종이를 발라 만든 보관함에 넣고 쌓아 두게 하였다. 3층으로 된 보관함의 넓이는 겨우 세 권의 책을 넣을 수 있다. 길이 역시 넓이와 비슷하다.

… 옛날 대부(大夫) 거백옥(蘧伯玉)은 자신의 잘못을 줄이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나이 50세가 되자 지난 49 년간의 잘못된 것을 알았다고 한다. 명년(明年)이면 내 나이 50세가 되는데, 만약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면 이 문집을 다시 고쳐서 편집해야 할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그 가운데 제각각 다른 것을 의뢰하는 것은 이미 의혹이 없다. ‘어진 자는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현혹되지 않고, 용기가 있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군자의 도리 세 가지란 바로 자신의 도(道)가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총명함은 젊은 시절에 미치지 못하고 학문과 지식의 조예는 초심(初心)에 부끄러움이 있다. 이러하니 내가 어찌 여러 가지 학문을 높이 쌓아 우뚝하게 자립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돌아보건대 내가 상제(上帝)를 대해 그 복을 백성들에게 내리고자 하는 생각으로 어렵고 큰일을 이어받아 부지런히 백성을 보호하고 긴급하게 어질고 현명한 인재를 구하였다. 어진(仁) 것이 아닌 집에는 거처하지 않고 의(義)로운 것이 아닌 길은 밟지 않았다. 이러한 것을 문자로 기록하였으니, 내 몸 속의 피가 흘러나온 것임을 자연히 속일 수 없다.” 『홍재전서』, ‘홍우일인재전서의 장명(欌銘) 병서(幷序)

그리고 정조는 이 글의 마지막에 명문을 새겨 성군(聖君)과 현자(賢者)의 도리와 단서를 터득해 나라와 백성을 구제하려고 노력했던 자신의 일생을 노래했다. 임금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학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철학자 군주’ 정조의 자부심과 더불어 그가 도달했던 높은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글이다.

“내 일찍이 듣건대 /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이 있다 / 풍운(風雲)의 바깥에서 활달하게 움직이고 / 우주 가운데 충만(充滿)하여 / 탁월한 그 문장이여 / 텅 비고 넓은 그 공정함이여 / 아득히 깊고 엄숙한 곳에 올라 바라보면 / 권세(權勢)란 대개 만물을 변화시키는 봄의 공교로움과 비슷하네 / 내가 오로지 정밀하고 깊고 넓게 생각해 모으고 머무르니 / 비록 감히 도통(道通)의 전수에는 견줄 수 없겠지만 / 경서(經書)를 씨줄로 삼고 사서(史書)를 날줄로 엮어 / 생각하건대 성군(聖君)인 복희씨·신농씨·요임금·순임금·우왕·탕왕·문왕·무왕과 성현(聖賢)인 공자·맹자·주자의 단서와 여분을 스스로 터득한 사람은 / 구태여 묻지 않더라도 만천명월주인옹(萬千明月主人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끝>

1년6개월여 연재했던 '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는 오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지금까지 연재했던 내용은 이달 중 다산초당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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