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妄)과 망상(妄想)…“불꽃같은 삶이 바로 ‘망상’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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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妄)과 망상(妄想)…“불꽃같은 삶이 바로 ‘망상’ 속에 있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5.17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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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90)
 

[한정주=역사평론가] 무릇 사람이 포기하여 제 한 몸 공경하지 않는 자는 어렸을 때부터 해가 뜨면 일어나 망령된 말과 망령된 행동만 한다.

한가로이 홀로 앉아 있으면 망령된 생각이 번잡하고 어지럽게 일어난다. 잠자리 들면 밤이 새도록 망령된 꿈을 꾼다.

늙어 죽을 때까지 ‘망(妄)’이라는 한 글자로 평생을 마치고 만다. 아아! 슬프다. (재번역)

凡人之暴棄 不自敬身者 自幼時日出而起 妄言妄事 閑居而獨坐 妄思紛挐 寐則終夜妄夢 至老死不過以妄之一字 了當平生 嗚呼悲矣. 『이목구심서 1』

망상(妄想)이 분주하게 일어날 때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쳐다보면, 온갖 잡념이 일시에 사라지는 까닭은 정기(正氣)가 돌기 때문이다. (재번역)

妄想走作時 仰看無雲之天色 百慮一掃 以其正氣故也. 『이목구심서 2』

사람의 삶이란 게 ‘망(妄)’이라는 한 글자에서 조차 벗어나지 못한단 말인가! 그 얽매이고 구속받는 것이 이와 같다면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망상은 물리쳐야 할 해악인가? 그렇지 않다. 유학과 성리학의 세계와 사유가 지배하는 조선의 사대부에게 마음을 제멋대로 풀어놓는 상태를 뜻하는 ‘방심(放心)’과 ‘잡념(雜念)’과 ‘망상(妄想)’과 ‘상념(想念)’은 자신을 망치는 가장 해로운 적이었다.

그러나 성호학파의 문인 이학규(1770〜1835년)는 오히려 망상을 통해 절망으로 가득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와 활력을 찾는다.

그는 말한다. 망상 덕분에 유배지에 갇혀 있는 이 몸도 크게는 온 천하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작게는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터럭 끝까지도 헤매고 다닐 수 있다고. 또한 망상을 하는 순간 내 마음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할 만 하다고.

만약 지금 마음속의 ‘한 가닥 망상’을 없애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불씨가 죽어버린 잿더미와 같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영원히 살아 움직임을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은 망상에 있을 따름이다.

유학과 성리학적 세계와 사유에 얽매이고 구속당하기를 전면적으로 거부한 이른바 ‘망상 예찬’이다. 망상이 있어야 사람의 정신과 마음은 비로소 사상의 한계와 세상의 경계를 넘어서 무한과 무궁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18세기 조선에서 사람의 망상을 붙잡아두려고 한 사상의 한계와 사유의 경계가 왕조 체제와 성리학이었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근대 체제와 자본주의이다.

망상이 없다면 어찌 그것을 넘어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망상하고 또 망상하라.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삶이 바로 그 ‘망상’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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