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제국, 그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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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제국, 그 불편한 진실
  • 조선희 기자
  • 승인 2014.02.18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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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도록 꺼지지 않는 편의점의 불빛은 우리를 소비로 이끄는 유도등이다.
하루 평균 880만 명이 방문하고 하루 동안 거래되는 금액이 356억 원에 이르는 ‘편의점 제국’ 대한민국은 편의점 최초 발상지 미국은 물론 편의점의 최대 발흥지인 일본과 대만을 제치고 인구 대비 편의점 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상업 시설뿐만 아니라 공공 기관과 문화 공간마저 흡수 통일하며 만능 복합 생활 거점으로 나날이 진화하는 편의점은 이른바 갑을 관계, 골목 상권 이슈 등 그 이면을 드러내며 사회적 화두로 급부상했다.

사회학자 전상인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는 저서 『편의점 사회학』에서 우리의 일상 한복판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편의점을 현대 한국 사회의 축도이자 도시 생활의 단면으로 간주한다.

편의점의 불편한 진실
24시간 편의점이 국내에 상륙한 지 올해로 25년이 됐다. 1989년 당시 미국계였던 세븐일레븐이 서울 송파구에 올림픽선수촌점을 열면서 우리나라의 편의점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이후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편의점 수는 공식적으로 총 2만4559개에 달하고 있다.

편의점 1개당 인구수는 2075명으로 대한민국은 편의점 최초 발상지 미국은 물론 편의점 최대 발흥지인 일본과 대만을 제치고 인구 대비 편의점 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힌다.

재래식 소매업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편의점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고도의 압축 성장을 경험했다. 편의점이 등장한 지 5년째이던 1993년 1000호점을 돌파했는데, 이는 편의점의 역사로 따져 우리나라의 20년·10년 선배인 일본(6년)과 대만(12년)보다 빠른 속도였다.

▲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한 제주도 서귀포시 태흥리의 ‘훼미리마트 서귀태흥점’.
울릉도와 백령도, 마라도는 물론 금강산과 개성공단에도 진출한 편의점은 이제 단순한 ‘점포’가 아니다. 가게, 빵집, 약국, 문방구, 꽃집, 사진관, 금은방, 가전제품 대리점, 만화방, 식당, 술집, 카페, 은행, 여행사, 주민센터, 우체국, 파출소, 어린이집, 복지기관, 구호시설, 문화센터 등으로 편의점은 오늘날 ‘천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

편의점은 주변의 상업시설, 공공기관, 문화공간을 하나하나 흡수·통일하며 만능 복합생활거점으로 진화하고 있다. 언제든 쉽게 찾아갈 수 있고 구매하지 못할 상품이 없으며 제공받지 못할 서비스 또한 거의 없어 편의점에 대한 의존도는 나날이 높아지는 추세다.

편의점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일도 흔해졌고 편의점을 거쳐 등교하고 편의점에 들러 퇴근하는 일상도 낯설지 않다.

이처럼 편의점이 생활의 중심, 생활의 도구, 생활의 방법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는데도 이를 학문적으로 방치하거나 간과하는 일은 지식 사회의 직무 유기가 아닐 수 없다. ‘편의점 사회학’의 필요성과 가능성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 편의점 택배 이용 고객이 포스트박스의 안내에 따라 택배를 접수하고 있다.(CJ대한통운 제공)
24시간 잠들지 않는 자본주의 욕망의 배출구
2007년 제주도 남단 마라도에 GS25가 입점하고 2008년과 2010년 울릉도와 백령도에도 편의점이 개설되면서 개성공단에서 마라도까지 전국 232개 모든 시군구에 편의점이 진출하지 않은 곳은 단 한 곳도 남지 않게 되었다.

대낮처럼 밝은 유리 벽 안에서 사람들은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현금을 인출하고 휴대폰을 충전한다. 콘돔과 소화제, 담배와 복권은 물론이고 여행 상품, 수입 자동차, 요트, 심지어 명품까지도 판매한다.

1년 365일 언제 찾아가도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편의점을 혹자는 ‘도심 속 오아시스’, ‘도시의 성좌’로 명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편의점과 관련된 뉴스가 언론이나 세간에 끊이지 않는 것은 반드시 편의점의 편의성 때문이 아니다.

▲ 훼미리마트가 선보인 ‘이동형 편의점’
편의점의 등장과 확산은 한국에서 자본주의 소비 사회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밤새도록 꺼지지 않는 편의점의 불빛은 우리를 소비로 이끄는 유도등이다. 또한 우리는 극치에 이른 합리주의적 정신과 관행을 편의점에서 발견한다. 디지털 피킹 시스템, 전자 발주 시스템, 포스 시스템(판매 시점 정보 관리 시스템), 정찰제와 바코드, 리더기, 스캐너를 갖춘 편의점은 공간의 과학화 및 정보화라는 관점에서 이른바 ‘맥도널드 사회’의 전형을 보여 준다.

편의점은 우리 시대의 세계화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세계적 프랜차이즈 체인의 전형인 편의점은 세계화의 상징이자 지표 혹은 동력으로서 편의점이 있다는 것 혹은 많다는 것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동참하고 있거나 편입되었다는 확실한 물적 증거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함께 급속한 도시화, 개인화, 정보화 흐름 속에서 신유목 사회로 치닫는 현실에서 편의점은 인구 관리와 사회 질서를 위한 새로운 도시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능들을 한곳에 집결한 다음 이들 간에 거대한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편의점은 새로운 통치 장치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편의점에 의해 신자유주의적 의식과 일상이 알게 모르게 육화(肉化)되고 있지만 현실 속 우리들은 편의점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는 생각만 할 뿐 세상을 은밀히 지배하는 편의점의 숨은 권력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 축구경기 관람을 위해 20만 인파가 운집한 서울광장 인근의 훼미리마트 ‘광화문점’ (BGF리테일 제공)
소비주의 문화에서 사회 양극화까지
편의점은 자본주의, 소비주의, 합리주의, 세계화를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창구일 뿐만 아니라 점점 심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를 읽는 축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편의점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도시에 사는 젊은 전문직 종사들에 의해 과시적 소비가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고 특히 우리 사회의 양극화 추세가 심화됨에 따라 편의점은 전반적으로 ‘을’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누가 편의점을 이용하고 누가 편의점을 소유하는가를 살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우리나라 편의점 이용 고객 현황을 보면(2012년 기준) 연령별로는 20대(31.6%)와 30대(26.0%)가 가장 많다. 계층 및 직업별로는 회사원이 49.5%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학생이 29.3%를 차지한다.

한편 국가별 편의점의 주요 구매 상품을 살펴보면 편의점 최대 발흥지 중 하나인 대만과 최근 편의점 확산이 빠르게 진행 중인 중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식사 대용 식품이 39.7%, 음료 19.0%, 담배 16.1%로 식사 때문에 편의점을 찾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

또한 상품 종류별 매출 구성으로 보면 담배가 39.1%로 가장 높다. 전상인 교수는 이를 통해 오늘날 한국의 편의점이 20·30대 젊은이들이 식사를 간단히 해결한 다음 담배나 술 등으로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는 장소로 정착되어 간다고 분석한다.

▲ 편의점을 찾는 비율은 식사 대용 식품이 39.7%, 음료 19.0%, 담배 16.1%다.
현재 우리나라 편의점 업계에서는 이른바 ‘빅3’가 90%를 넘는 점유율을 보인다. 2012년 말 기준 CU가 7945개의 점포에 32.3%의 점유율을, 세븐일레븐이 7202개의 점포에 29.3%의 점유율을, 그리고 GS25가 7138개의 점포에 29.1%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CU는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보광그룹, 세븐일레븐은 롯데그룹, GS는 LG그룹에서 인적 분할한 GS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대기업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편의점은 우리 시대의 약자들이 당장 이용하기에 가깝고 편리해 사회 전반의 구조적 현실에 대한 자각과 성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른바 ‘촛불 시위’ 때마다 주변 편의점들이 엄청난 특수를 누리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양초나 우산, 컵라면 등을 쉽게 구입하지만 정작 그러한 편의점의 배후가 거대 자본과 자본주의 세계 체제 혹은 신자유주의라는 사실은 미처 상기하지 못한다.

우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에게 도래한 편의점 전성시대가 우리의 삶의 품격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사회 공동체의 문제와 인류의 미래에 관해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 진지한 물음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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