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인 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고 제1의 가치이자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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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고 제1의 가치이자 미덕”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5.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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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① 창신(創新)의 미학⑦
 

[한정주=역사평론가] 18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심익운이라는 문인이 쓴 ‘잡설사칙(雜說四則)’은 아주 짧은 네 가지 이야기를 나열하는 형식을 취해 세상을 풍자하고 당시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마치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단편을 결합해 구성한 옴니버스 형식으로 꾸며진 오늘날의 소설과 시나리오 형식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신선하기 그지없다.

심익운은 일찍이 장원급제하여 출세하고 또한 조정 안팎에서 문명(文名)을 떨쳤지만 정조가 왕세손일 때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글을 올린 일로 정조 즉위 후 처형당한 형 심상운의 반역죄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흑산도와 제주도 등지로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맞은 비운의 문사다.

정조 시대 문치를 빛낸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서얼 출신 관료 중의 한 사람인 성대중이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심익운의 재주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비운을 불쌍하게 여겼다”는 증언을 남길 만큼 문학적 재능이 탁월했다고 한다.

“(1) 세 사람이 함께 말 한 마리를 샀다. 그런데 그 말에 적합한 주인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서로 의논을 하다가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의 등을 샀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의 머리를 샀다.’ 나머지 한 사람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의 엉덩이를 샀다.’

이에 서로 말을 맞춘 다음에 말을 타고 길거리로 나왔다. 말의 등을 산 사람은 말에 타고, 말의 머리를 산 사람은 앞에서 말을 끌고, 말의 엉덩이를 산 사람은 뒤에서 말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마치 한 사람의 주인에 종놈 둘이 따르는 꼴과 같았다. 무릇 사기를 부려 어리석은 사람을 속여서 스스로 그 편리함을 취하는 자는 바로 말의 등을 산 부류의 인간이다.

(2) 탐욕스럽고 흉악한 도철(饕餮)의 세상에서 청렴한 사람이 벼락을 맞고 죽었다. 태고 적에 천제(天帝)가 뇌사(雷師)에게 명을 내려서 천하의 악한 사람 한 명을 선택해 벼락을 때려 죽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천하에는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온통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천하의 모든 사람을 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청렴한 사람 한 명을 골라 악인(惡人)으로 삼아 벼락을 때려 죽였다. 미친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도리어 미치지 않은 사람이 미친 사람이 되는 법이다. 심하구나! 홀로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을 세상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3) 어떤 마을의 한 노파가 남편이 죽는 바람에 곡(哭)을 하였다. 매일 밤마다 노파는 이렇게 울부짖었다. ‘영감! 나도 데려가세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지붕 위에 올라가서 죽은 영감의 목소리로 외쳤다. ‘할멈! 그만 가자구.’ 그런데 노파는 죽은 영감의 귀신이라고 여기고 버럭 화를 내며 침을 뱉었다.

죽은 영감의 귀신을 싫어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죽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지금 저 이익과 욕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귀신 보다 더 심하다. 그런데 부귀를 탐하는 사람이 밤마다 울부짖는 노파보다 더 많다. 얼마나 미혹(迷惑)한가!

(4) 도둑이 약속하면서 말하기를 ‘재물을 훔치러 몰래 남의 집에 들어갈 때에는 너와 나 두 사람이 한패가 되어 한 사람은 앞에 서고 한 사람은 뒤를 살핀다. 밤마다 그렇게 하자. 문과 벽에 구멍을 내어 뚫고 들어가서 획득한 물건은 한 사람이 모두 차지하지 않는다. 만약 사람들에게 붙잡히는 상황이 되어 두 사람 다 빠져 나올 수 없을 경우 네가 나를 죽이거나 내가 너를 죽이더라도 귀신이 되어 원망하지 말자.’라고 하였다.

며칠 후 담을 뚫고 장차 어떤 사람의 집에 침입하려고 하였다. 앞에 선 도둑이 자신의 발을 들여놓고 미처 재물을 훔치지도 못했는데 집주인이 안에서 발을 잡고 또한 잡아당기는 바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도둑이 ‘곧 동이 틀 텐데 장차 이 일을 어찌하오?’라고 말하였다. 앞에 선 도둑은 ‘잠시 기다려보자. 성급하게 굴지 마라.’라고 대꾸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말하였다. ‘내 비로소 상황을 알겠다. 일이 급하게 되었구나.’ 이에 뒤따라오던 도둑이 칼을 뽑아들고 앞장선 도둑의 머리를 베고 도망쳐버렸다. 이로움을 추구하는 선비란 작자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죽음을 함께 하기로 기약하지만 이내 저버린다. 저 재물을 훔치러 남의 집에 들어가는 도둑들만도 못하다고 하겠다.” 심익운,『백일집(百一集)』 ‘잡설사칙(雜說四則)’

자신의 감성과 생각을 자유분방한 형식을 취해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붓이 가는 대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소품문은 일정한 형식과 격식을 갖추어야만 하는 고문의 대척점에 서 있는 비정형(非定形)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과 문득 느끼게 된 감성들을 자유로운 형식의 글에 담은 이익의 『관물편(觀物篇)』은 이러한 소품문을 모아 엮어놓은 책이다.

“성호 옹이 어느 날 이(蝨)를 불태우다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하늘이 미물(微物)을 낳을 때 사람의 살을 물어서 먹게 하였다. 무릇 사람은 눈이 밝고 손이 민첩해 한번 뒤지면 이를 잡을 수 있다. 사람을 물지 않으면 굶어서 죽고, 사람을 물면 불태워져 죽는다. 사람을 무는 죄가 마땅히 죽을 만하다고 말하면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다. 또한 사람을 무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말하면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다. 그래서 슬픈 마음으로 이를 죽였다. 일에는 참으로 이와 같은 종류의 것들이 많다.” 이익,『관물편』

“꽃의 향기는 보성(保城)에서 나는 꽃 보다 강렬한 것이 없다. 사람들은 별반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성호 옹이 지나가다가 꽃의 향기를 맡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름답구나! 꽃의 향기여. 이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너에게 이런 향기가 있어서 지금 나는 그 향기를 감상한다. 이 또한 삶의 행복이다. 다만 내가 돌아간 뒤에는 끝없이 향기를 풍겨도 텅 빈 공중 밖으로 산산이 흩어져버려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미 깨우치고 난 후 이렇게 말했다. ‘끝없이 향기를 풍기는 것은 너 꽃의 본성이다. 허공에 향기가 산산이 흩어진다고 한들 어찌 본성을 저버리겠는가?’” 이익,『관물편』

특히 이 소품문의 문체와 형식은 순정(純正)한 고문의 전통을 해치는 사회악으로 지목당해 정조가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일으켰을 만큼 새로운 글쓰기를 추구했던 당대 지식인과 문인들을 사로잡았다.

더욱이 문체반정조차 소품문의 유행을 잠깐 주춤하게 할 수는 있었을 만정 완전히 금지할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참신하고 창의적인 글쓰기를 추구하는 작가 정신은 어떠한 압박과 탄압에 의해서도 말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글을 쓰는 사람에게 새롭고 독창적인 글은 세상의 그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고 제1의 가치이자 미덕이었기 때문이다.

참신하고 창의적인 문장과 새롭고 독창적인 글쓰기를 위해서는 그 어떤 난관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러한 작가 정신으로 말미암아 문장의 형식과 내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무궁무진하게 확장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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