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天然)과 인위(人爲)…학을 춤추게 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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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天然)과 인위(人爲)…학을 춤추게 하는 방법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5.21 0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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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94)
 

[한정주=역사평론가] 나는 일찍이 학(鶴)을 춤추게 하는 방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깨끗하게 청소한 평평하고 매끄러운 방에 기물이나 세간을 모두 치우고 단지 구르는 둥근 모양의 나무 한 개만 놓아둔다. 그런 다음 학(鶴)을 방 안에 가두고 구들에 불을 지핀다.

발이 뜨거워진 학은 견디지 못하고 둥근 나무에 올라서고 반드시 구르면서 섰다가 미끄러졌다가 하게 된다. 양 날개를 수도 없이 오므렸다가 폈다가 하고, 아래를 굽어보았다가 위를 쳐다보았다가 한다. 그때 창 밖에서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타서 떠들썩하게 소리를 내면 마치 학이 엎어지고 넘어지듯이 춤을 춘다. 서로 절조(節調)를 맞추어 연주한다.

학은 뜨거워서 마음이 번거롭고 떠들썩한 소리에 귀는 막막하지만, 이 순간 기쁨에 빠져 그 괴로움을 잊어버린다.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한 다음에 비로소 학을 풀어놓는다.

여러 날이 지난 뒤 또한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타면 학은 홀연히 기쁜 듯이 날개를 치고 모가지를 꼿꼿이 세우고 절조에 따라 훨훨 춤을 춘다. 기이한 지략과 기묘한 계책이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게 했는가. 이로부터 만물(萬物)이 모두 자연(自然)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할 따름이다.

장자가 말하기를 “말과 소는 그대로가 천연(天然)인데, 머리를 잡아매고 코를 뚫는 것은 인위(人爲)이다. 이것은 통하고자 하면서 오히려 막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잡아매고 뚫는 것 역시 천연이다. 만약 머리를 잡아매지 않고 코를 뚫지 않는다면 말과 소의 성품을 인도할 수가 없다. 저 말과 소의 머리와 코를 바라보면 이미 타고날 때부터 잡아매고 뚫을 만한 형세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천연이다. 이른바 인위라고 말하는 것은 학을 춤추게 하는 부류일 따름이다. (재번역)

余嘗聞舞鶴法 當凈掃平滑之房 不留器什 只置圓轉之木一箇 囚鶴於房中 爇火于堗 使房熱烘 鶴不耐其足熱 立於圓木 必流轉乍立乍躓 兩翮翕張無常 俯仰不已 其時窻外吹竹彈絲 喧闐嘲轟 若與鶴之顚倒相節奏者 鶴心煩于熱 耳閙于聲 有時而悅忘其勞 旣久之廼放 後多日又吹竹彈絲 鶴忽欣然鼓翼矯頸 應節翩翻矣 奇謀妙計一至于此 自是萬物皆不全其自然爾 莊子謂馬牛天也 絡首穿鼻人也 此欲通而反塞也 絡之穿之亦天也 若不絡不穿 不可以導馬牛之性也 看它首它鼻 已有天生可絡可穿之形勢此天也 其所謂人者 舞鶴之類歟. 『이목구심서 1』

인간의 뜻에 맞게 자연과 사물을 길들이는 것은 자연의 본성을 거스르는 행동이다. 학을 춤추게 하는 것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학을 괴롭히는 것밖에 안 된다. 인간에게는 그렇게 할 어떤 권한도 권리도 없다.

말과 소가 그대로 천연(天然)이라면 학 또한 그렇다. 말과 소의 머리를 얽고 코를 뚫는 것이 인위(人爲)가 아닌 천연(天然)이라고? 말과 소의 성품을 인도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말이다.

말과 소의 성품은 무엇인가? 사람을 태워 멀리 이동하고, 사람을 도와 농사짓는 것인가? 인간의 시각에서 볼 때만 그럴 뿐이다. 인간이 어떻게 말과 소의 성품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말과 소가 인간의 성품을 알 수 있다는 말과 똑같이 황당한 얘기다.

말과 소의 머리를 얽고 코를 뚫는 것 역시 천연이 아니라 인위일 뿐이다. 학을 춤추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장 자크 루소는 자연 만물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 완전하다고 말했다.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자연은 뒤틀리고 어긋난다. 자연 만물을 타고난 그대로 두는 것만이 천연(天然)이고, 인간의 입맛에 맞게 고치거나 길들이는 것은 모두 인위(人爲)일 뿐이다.

이와 유사한 이치에서 어린아이와 동심(童心)은 천연(天然)이지만 견문과 지식이나 도리와 윤리는 모두 인위(人爲)일 뿐이다.

삶은 반드시 어린아이를 본보기로 삼고 글은 반드시 동심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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